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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봄바다 /김사인

by kimeunjoo 2011. 3. 11.

 

 

 

 

 

봄바다 /김사인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커서

다라이만 했지

다라이만 했지

 

구장집 마누라는

젖통도 커서

헌 런닝구 앞이

묏등만 했지

묏등만 했지

그 낮잠 곁에 나도 따라

채송화처럼 눕고 싶었지

아득한 코골이 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지

 

미끈덩 인물도 좋은

구장집 셋째 아들로 환생해설랑

서울 가 부잣집 과부하고

배 맞추고 싶었지

 

 

 

김사인의 흰고무신 / 이시영

 

그날 밤은 모든 것이 예정된 것처럼 보였다. 폭우 속을 뚫고 김사인이 왔었고 흰고무신을 신고 있었고

새로 막 시작된 술자리가 새벽으로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천둥 소리 속에 밖에서 누가 희미하게 나무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설연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 달려가 문을 열었더니 송기원과 나의 처가

거센 빗줄기 속에서 기세등등 들이닥치고 있었다. "복희년 나오라고 그래!" 바로 그때였다. 나와 송 사이에서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있던 사인이가 갑자기 일어나 문밖으로 내빼는데 흰고무신 신은 발이 비호처럼

빨랐다. 그리고 빗속을 번개처럼 가르며 사라졌다. 복희씨가 졸린 눈을 뜨기도 전에, 송과 나의 처가 시퍼렇게 걷어붙인 팔을 풀기도 전에 일어난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

 

 

 

봄밤 / 김사인

 

나 죽으면 부조돈 오마넌은 내야 도ㅑ 형, 요새 삼마넌짜리도 많던데 그래두 나한테는 형은

오마넌은 내야도ㅑ 알었지 하고 노가다 이 아무개(47세)가 수화기 너머에서 홍시 냄새로 출렁거리는

봄밤이다.

 

어이, 이거 풀빵이여 풀빵 따끈할 때 먹어야 되는디, 시인 박아무 개(47세)가 화통 삶는 소리를 지르며

점잖은 식장 복판까지 쳐들어 와 비닐 봉다리를 쥐어주고는 우리 뽀뽀나 하자고, 뽀뽀를 한번 하 자고

꺼멓게 술에 탄 얼굴을 들이대는 봄밤이다.

 

좌간 우리는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해야 혀 자슥들아 하며 용봉탕 집 장사장(51세)이 일단 애국가부터

불러제끼자, 하이고 우리집서 이렇게 훌륭한 노래 들어보기는 츰이네유 해쌓며 푼수 주모(50세) 가

빈 자리 남은 술까지 들고 와 연신 부어대는 봄밤이다.

 

십이마넌인데 십마넌만 내세유, 해서 그래두 되까유 하며 지갑 들 뒤지다 결국 오마넌은 외상을 달아놓고, 그래도 딱 한 잔만 더, 하고 검지를 세워 흔들며 포장마차로 소매를 서로 끄는 봄밤이다.

 

죽음마저 발갛게 열꽃이 피어

강아무개 김아무개 오아무개는 먼저 떠났고

차라리 저 남쪽 갯가 어디로 흘러가

칠칠치 못한 목련같이 나도 시부적시부적 떨어나갔으면 싶은

 

이래저래 한 오마넌은

더 있어야 쓰겠는 밤이다.

 

 

 

 

구장집 마누라는 방뎅이도 크고 젖통도 크고 잠도 푸지게 잘 자니 미끈덩 아들 쑥쑥 낳겠다. 역시나 셋째가 제일 미끈덩하겠다. 미끈덩 인물 재산이겠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라도 되는 양 바람깨나 피우겠다. 도망치듯 상경해 이양저양 살피다 부잣집 과부 만나 한몫 챙기기도 하겠다.

살집 좋은 과부 곁에서 시름시름 늙어가며 이모저모 기웃대다 '인생 탕진하'겠다. 저리 생생(生生)한 구장집 마누라 몸을 거쳐 미끈덩 셋째 아들로 환생하는 것, 사내들의 로망이겠다. 이 시의 묘미는 현실 속 구장집

마누라가 아니라, 상상 속 셋째 아들의 부잣집 과부로 튀는 오지랖의 '쓰리 쿠션'에 있겠다.

 

이 시를 읽노라면 김 시인의 '심성'을 엿볼 수 있는 이시영 시인의 재미난 산문시 하나가 떠오른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술자리에 김사인 시인이 폭우 속 흰 고무신을 신고 와 합류했다는 것.

새벽 즈음에 이 시인의 처가 천둥치듯 "복희년 나오라고 그래!" 소리치며 들이닥쳤다는 것.

바로 그때 "나와 송 사이에서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있던 사인이가 갑자기 일어나 문밖으로 내빼는데 흰고무신 신은 발이 비호처럼 빨랐다. 그리고 빗속을 번개처럼 가르며 사라졌다.

복희씨가 졸린 눈을 뜨기도 전에, 송과 나의 처가 시퍼렇게 걷어붙인 팔을 풀기도 전에 일어난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김사인의 흰고무신')는 것.

 

김사인(52) 시인은 사람 좋은 충청도 양반이다. 떠듬떠듬 어눌하게, 천천히 길게, 그러나 뜨겁게 시를 쓰는 시인이다. 첫 시집을 내고 19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냈으니, 시 한 편을 길게는 30년을 쓰고 썼다니 '곡진'하다는 말, '지극'하다는 말은 그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그런 그가 1980년대의 혁혁한 문화운동가이자 날카로운 논객이었다는 건, '노동해방문학'사건에 관여해 수배되기도 했다는 건 다 아는 전력(!)이다.

"시는 크고 요란한 것이 아니라 작고 나지막한 섬김"이라고 말하는 그는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시를 높이고 세상과 사물을 높이는 드문 미덕을 가진 시인임에 틀림없다.

 

봄은 남쪽으로부터 오고, 남쪽 끝 바다로부터 온다.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같이 방방한 저 들판에, 구장집 마누라 젖통 같이 봉긋한 저 능선에, 구장집 마누라

코골이 같이 달디단 봄바람으로 온다. 바다 내음 향긋한 천지가 무릇 봄바다다.

물 맑은 봄바다에 두둥실 떠가는 저 배를 타고 미끈덩 풋것들로 환생하고 싶다. 어쨌든 봄이고 하여튼 봄밤이고 바야흐로 봄바다다.

 

: 정끝별·시인

 

 

 

때늦은 사랑 / 김사인

내 하늘 한켠에 오래 머물다
새 하나
떠난다
힘없이 구부려 모았을
붉은 발가락들
흰 이마
세상 떠난 이가 남기고 간
단정한 글씨 같다
하늘이 휑뎅그렁 비었구나
뒤축 무너진 헌 구두나 끌고
나는 또 쓸데없이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늙어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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