堂山(당산) 나무 밑 女子들 / 서정주
질마재 堂山 나무 밑 女子들은 처녀 때도 새각씨 때도 한창 壯年(장년)에도 戀愛(연애)는 절대로 하지
않지만 나이 한 오십쯤 되어 인제 마악 늙으려 할 때면 戀愛를 아조 썩 잘 한다는 이얘깁니다. 처녀 때는
친정부모 하자는대로, 시집가선 시부모가 하자는 대로, 그 다음엔 또 남편이 하자는 대로, 진일 마른일
다 해내노라고 겨를이 영 없어서 그리 된 일일런지요? 남편보단도 그네들은 응뎅이도 훨씬 더 세어서,
사십에서 오십 사이에는 남편들은 거의가 다 뇌점으로 먼저 저승에 드시고 비로소 한가해 오금을 펴면서
그네들은 戀愛를 시작한다 합니다. 朴푸접이네도 金서운니네도 그건 두루 다 그렇지 않느냐구요.
인제는 房을 하나 온통 맡아서 어른 노릇을 하며 冬柏(동백)기름도 한 번 마음껏 발라 보고 粉(분)세수도
해보고 金 서운니네는 나이는 올해 쉬흔 하나지만 이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이뻐졌는데, 이른 새벽 그네
房(방)에서 숨어나오는 사내를 보면 새빨간 코피를 흘리기도 하드라구요. 집 뒤 堂山(당산)의 무성한
암느티나무 나이는 올해 七百살, 그 힘이 뻗쳐서 그런다는 것이여요.
未堂 徐廷柱(미당 서정주 1915-2000)
* 堂山(당산) :토지(土地)나 부락(部落)의 수호신(守護神)이 있다고 이르는 산이나 언덕. 우리나라 중부(中部) 이남(以南)에 많으며, 대개 부락(部落)에서 가까이 있는 산이나 언덕이 됨
동천(冬天) / 서정주
내 마음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冬天 동천 : 겨울 하늘
꽃 / 서정주
가신 이들의 헐떡이던 숨결로
곱게 곱게 씻기운 꽃이 피었다
흐트러진 머리털 그냥 그대로,
그 몸짓 그 음성 그냥 그대로,
옛사람의 노래는 여기 있어라.
오ㅡ 그 기름 묻은 머릿박 낱낱이 더위
땀 흘리고 간 옛사람들의
노랫소리는 하늘 우에 있어라
쉬여 가자 벗이여 쉬여서 가자
여기 새로 핀 크낙한 꽃 그늘에
벗이여 우리도 쉬여서 가자
맞나는 샘물마닥 목을 축이며
이끼 낀 바윗돌에 턱을 고이고
자칫하면 다시 못볼 하늘을 보자
꽃 / 서정주
꽃 옆에 가까이 가는 아이들이 있으면 , 할머니들은「얘야 눈 아피 날라. 가까이 오지 마라.」고 늘 타일러 오셨습니다.그래서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피어나는 山과 들의 꽃들을 이쁘다고 꺾기는커녕, 그 옆에 가까이는 서지도 않고, 그저 다만 먼 발치서 두고 아스라히 아스라히 만 이뻐해 왔읍니다.
그러나, 꼭 한가지 例外가 있긴 있었습니다. 그것은 딴 게 아니라, 누구거나 즈이집 송아지를 이뻐하는 사람이, 그 송아지가 스물 넉 달쯤을 자라서 이제 막 밭을 서먹서먹 갈 만큼 되었을 때, 그때가 바로 진달래꽃 때쯤이어서, 그새 뿌사리의 두 새로 자란 뿔 사이에 진달래꽃 몇송이를 매달아 두는 일입니다.
소 - 그것도 스물 넉 달쯤 자란 새 뿌사리 소만은 눈 아피도 모른다해서 그리 해 온 것이었어요.
바위와 蘭草(난초)꽃 / 서정주
-佛紀 2517년 첫날에 부처
바위가 저렇게 몇千年씩을
침묵으로만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
蘭草는 답답해서 꽃피는거라.
답답해서라기보단도
李道令을 골랐던 春香이 같이
그리루 시집이라도 가고파 꽃피는거라.
歷史(역사) 表面(표면)의 市場(시장)같은 行爲(행위)들
귀시끄런 言語(언어)들의 公害(공해)에서 멀리 멀리
고요하고 영원한 참목숨의 江(강)은 흘러
바위는 그 깊이를 시늉해 앉았지만
蘭草는 아무래도 그대로는 못 있고
"야" 한마디 내뱉는거라.
속으로 말해 나즉히 내뱉는거라.
▲ 석남화 (Rhododendron aureum Georgi)
석남꽃 / 서정주
머리에 석남(石南)꽃을 꽂고
네가 죽으면
머리에 석남 꽃을 꽂고
나도 죽어서
나 죽는 바람에
네가 놀래 깨어나면
너 깨는 서슬에
나도 깨어나서
한 서른 해만 더 살아 볼꺼나
죽어서도 살아서
머리에 석남 꽃을 꽂고
서른 해만 더 한 번 살아 볼꺼나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면서 피어나는 꽃.석남꽃
석남꽃은 중부이북의 높은 산에서 자라는 노랑만병초를 두고 부르는 이름이라고 합니다.윤후명 산문집 `꽃`과 `삼국유사 읽는 호텔`에 석남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사 :
신라(新羅) 사람 최항(崔伉)은 자(字)는 석남(石南)인데, 애인이 있었지만 그의 부모가 금해서 만나지 못하다가 몇 달 만에 그만 덜컥 죽어 버렸다.그런데 죽은 지 여드레 만의 한밤중에 항이 문득 그의 애인 집에 나타나자, 그 여자는 그가 죽은 뒤인 줄도 모르고 좋아 어쩔 줄을 모르며 맞이해 들였다.
항은 그 머리에 석남(石南)꽃 가지를 꽂고 있었는데, 그걸 나누어서 그 여자한테 주며,
"내 아버지 어머니가 너하고 같이 살아도 좋다고 해서 왔다."고 했다.
그래 둘이는 항의 집까지 가서, 항은 잠긴 대문을 보고 혼자 먼저 담장을 넘어 들어갔는데 밤이 새어 아침이 되어도 웬일인지 영 다시 나오질 않았다.
아침에 항의 집 하인이 밖에 나왔다가 홀로 서 있는 여자를 보고 "왜 오셨소?"하고 물어,
여자가 항과 같이 왔던 이야기를 하니 하인은, "그 분 세상 떠난 건 벌써 여드레나 되었는데요. 오늘이 묻을 날입니다. 같이 오시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했다.
여자는 항이 나누어 주어 자기 머리에도 꽂고 있었던 석남꽃 가지를 가리키며,
"그 분도 이걸 머리에 틀림없이 꽂고 있을 것이다."고 했다.
그래, 그런가 안 그런가 어디 보자고 항의 집 식구들이 두루 알고 따지게 되어, 죽은 항이 담긴 널을 열고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항의 시체의 머리에는 석남꽃 가지가 꽂혀 있었고, 옷도 금시 밤 풀섶을 거쳐 온 듯 촉촉이 젖은 그대로였고벗겼던 신발도 다시 차려 신고 있었다.
여자는 항이 죽었던 걸 알고 울다가 너무 기가 막혀 금시 숨이 넘어가게 되었다.그랬더니 그 기막혀 숨 넘어가려는 바람에 항이 깜짝 놀라 되살아났다. 그래 또 서른 핸가를 같이 살아 늙다가 갔다.
- 대동운옥(大同韻玉)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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