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 최영미
분위가 어색하면 삼십 분도 참지 못하고
지루한 인간과 차를 마시면 하루가 불편하고
맛없는 식사를 하면 사흘쯤 기분이 나쁘고
모임에 나가면 불안해,
추워도 숄을 어깨에 걸치지 못하고
싫은 사람과 같이 일하면 일주일이 불행하고
싫은 사람과 술 마시면 일주일이 지나도 불쾌하고
좋아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독약이라도 마다 않는,
어느새 / 최영미
사랑이 어떻게 오는지
나는 잊었다
노동과 휴식을 바느질하듯 촘촘히 이어붙인 24시간을
내게 남겨진 하루하루를 건조한 직설법으로 살며
꿈꾸는 자의 은유를 사치라 여겼다.
고목에 매달린 늙은 매미의 마지막 울음도
생활에 바쁜 귀는 쓸어담지 못했다 여름이 가도록
무심코 눈에 밟힌 신록이 얼마나 청청한지,
눈을 뜨고도 나는 보지 못했다.
유리병 안에서 허망하게 시드는 꽃들을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의식주에 충실한 짐승으로
노래를 잊고 낭만을 지우고
심심한 밤에도 일기를 쓰지 않았다
어느 날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
비스듬히 쳐다볼 때까지
보낸 편지함 / 최영미
내 수첩에서 지워진 이름들. 지워지지 않았으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
살아 있지만 죽은 이들보다 멀어진,
싸늘해지기 조금 전의 미지근한 애정.
두 번 세 번 고친 형용사들. 정중함이 지나쳐 또는 모자라
전문적인 양념을 뿌린 의례적인 인사들.
우정이 끝났는데도 찍지 못한 마침표.
상대를 잘못 고른 문장들.
웃음거리가 되었을 지나친 솔직함.
그녀의 전화기를 뜨겁게 달구고
친구의 친구에게까지 배달되었을 스캔들.
항의하는 편지들, 안녕하십니까로 시작되는
재판 냄새가 나는 문서들,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그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 밤에 쓰고 아침에 검열한
기다리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잔뜩 계획만 세우고 떠나지 못한 여행들,
어머니 앞으로 보낸 편지는 없다!
한 번뿐이었던 완벽한 하루는 저장되지 않았고
뚜껑이 열리면 걷잡을 수 없어
두 번 열고 싶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
여기에서 저기로 / 최영미
올해도 님을 만나지 못한 분홍빛 벽지를 팔고
한번 펼치지도 못한 화사한 이불을 빨고
이삿짐을 싸고 베갯잇을 바꾸었지
아침에 빠져나온 잠자리를
밤에 들어갔을 뿐인데,
여행의 끝이 보이네
떠나기만 하고 도착하지 않은 삶.
여기에서 저기로,
이 남자에서 저 여자로 옮기며
나도 모르게 빠져나간 젊음.
후회할 시간도 모자라네
문학동네 / 2009. 03.
최영미 시인의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
어느 날 영화를 공부하는 후배 한 녀석이 물었다. “형, 심수봉 노래의 비밀이 뭔지 아세요?”
그와 나는 주책 맞게도, 나이(?)에 걸맞지 않게 심수봉의 열렬한 팬이다.
“심수봉은 그대, 당신이라고 하지 않고 항상 ‘여자’라고 말한다는 거예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나는 여자이니까’ 등등의 노래를 떠올려 보니, 그래, 맞다. 심수봉은 대상이 모호한 그대, 그녀, 그 라고 하지 않고 남자/여자를 말한다.
심수봉 노래속의 ‘여자’는 사랑에 달뜨고 몸살이 나며, 질투하고 욕망하는,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의 ‘여자’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투명하고 정직하게 내보이는 ‘여자’.
이게 남근적 시선이라고? 그래도 별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수컷’이거나 ‘암컷’이다. 중간이거나 초월은 없다.
최영미의 시는 바로 그런 ‘여자’의 시다. 오랜 만에 그녀의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문학동네)을 사서 군밤 까먹듯 읽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도 그녀는 사랑하는/사랑했던/사랑하고픈 여자임을 표나게 보여줬는데, 여기서도 여전히 그렇다.
“무릇 여자로 태어나 노래하는 것들/홀로 달콤하며 홀로 아프고/홀로 뜨거운 것들의 운명은 변하지 않았다”
(‘2007년의 사포’)라니, 이건 그녀에게 불가피하게 수락해야할 ‘운명’인 모양이다. 이 운명의 표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러나, 심각하지 않다. 관음증의 그것처럼 음습하지도 않고 차라리 유쾌하다.
그녀의 시는 자주 스무살 무렵의 시간대로 회귀하는데, 그런 시를 읽을 때면 나 역시 그맘 때로 돌아가 그녀의 문장 속에 내 삶을 뒤섞곤 한다. 이것도 바르트적인 의미의 “쓰여지는 텍스트”인 것인가. 그녀의 시는 내게 ‘마들렌 과자’인가.
최영미의 사랑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가 휘젓고 다닌 구석구석이/흉터와 무늬가 되어/그가 일으킨 물결 밑에/꼼짝않고 얼어붙어/비가 와도 나는 흐르지 못한다.”(‘ love of my life?’)
몸에 각인된 흉터와 무늬. 불쑥불쑥 현재의 삶으로 틈입하여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드는 몸의 기억들. 그런데, 이상도 하여라. 그녀는 흉터와 무늬를 남겼던 사랑의 역사를 다시 반복하기를 꿈꾸고 있으니,
“이대로 세차게 흔들리다/누군가의 가슴바닥에/훅, 떨어졌으면...”(‘11월의 낙엽’).
그녀에게 사랑은, 몸으로 욕망하는 사랑은, 존재의 법칙이자 이유(raison d'etre)인 모양이다.
그녀는 “좋아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독약이라도 마다 않는”(‘그여자’) 여자였을 것이며, “날마다 찾아오는 쾌락을/잘게 부수어/구멍으로 밀어 넣는다/싱싱한 고기의 피묻은 입술(‘가장 쉬운 길’)로 살과 피를 먹고 살아야만 비로소 살아가는 힘을 얻는 여자.
이 정직하고 싱싱한 욕정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몸이 벌써 그걸 먼저 알아챈다.
“젊어서는 쳐다보기도 역겨웠던/선홍빛 냄새가 향기로워/가까이 코를 갖다댄다//그렇게 학대했는데도/내 몸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중년의 기쁨’)
이런 몸적 인식은 역사의 진보에도 적용이 되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몸의 변화이자 그 변화에 대한 인식이다. 가령, 이런 ‘아줌마스러운’ 인식(?)은 즐겁다.
“유모차 부대를 호위하는 청년들이 어찌나 멋있던지!/한국 남자들의 품종이 눈부시게 개량됐어/역사는 이렇게 진보하는 거야”(‘2008년 6월 서울’)
남자 몸의 품종개량의 역사가 곧 민주화 이후의 한국사회다. 이건 ‘여자’로서의 자각이 아니라면 쉽게 보이지 않을 터. 꽃미남에 열광하는 이 중년 여자의 욕망은 별로 추해보이지 않는데, 그건 생기로 발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잘 알려진 축구광이자 호나우디뉴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몸의 변화를 알아채는 것은 여자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자 다시 사랑할 순간이다.
“너를 보기 전에 나는/내가 얼마나 아름다움에 굶주렸는지를 몰랐다/너의 풍부한 표정, 입가의 사소한 움직임을/놓치지 않으려 눈을 반짝이다.../누워 쓰러지기 전에 나는/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알지 못한다”(‘일상의 법칙’) 굶주렸으니 채워져야 하고, 채워지지 않으면 그것은 죽음이다.
욕망하는 존재, 욕망하는 여자. 욕망이 사라지는 순간 그녀는 중년의 나이를 쓸쓸하게 확인하는데, 그것은 죽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빨 빠진 늙은이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겠지/욕망이 지나간 구멍으로 바람이 들락거리겠지, ‘온종일 집에서’) 김지하의 말을 비틀어 말하자면, 사랑이 아니면 자살이다.
“겉은 멀쩡하고 속은 화산이 타고 남은/재에 묻힌, 그녀는 날마다 자살을 꿈꾼다”(‘어떤 동문회’)
유예된 욕망, 채워지지 않는 사랑이므로 그녀는 반생은 “떠나기만 하고 도착하지 않은 삶”이다.
떠돌이의 삶이므로 연애와 사랑으로 충만했던 과거를 회고할 도리 밖에 없다.
(“이 남자에서 저 여자로 옮기며/나도 모르게 빠져간 젊음/후회할 시간도 모자라네, ‘여기에서 저기로’)
혹은 립스틱 짙게 바르고, 탐욕스럽게 몸을 갈구하는 육식동물로서 살아가던지,
그것을 하지 않고
팔 년만에 돌아온 봄이었다.
금욕에 길들여진 정갈한 방.
화분에 물을 주고 밖을 내다 보니
벌레처럼 들끓는 봄볕
범람하는 꽃가루 때문인가
쉽게 행복해지기를 거부하던 육체가
바위처럼 뻣뻣해진 가슴 열고,
뜨거웠던 용암의 분화구를 추억한다.
사교계의 꽃이 되고 싶지 않아
무대에서 내려온 배우가
길게 누워 봄을 앓는다
소문만 무성했지 자신을 불사르지 못한
생애의 마지막 연기를 준비하며
옷을 갈아입고 립스틱을 칠한다.
(취미를 완전히 잃지는 않았겠지?)
질겨진 가죽에 향수를 바르면
육식동물이 될까?
- 4월은 잔인한 달 -
이 시집의 발문은 그녀의 첫 시집을 두고 “욕정을 사랑으로 은폐함이 없이 성에 직핍한 그녀의 대담성에
독자들, 특히 남성들은 혼비백산하였다”는 최원식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혼비백산은 너스레일 것이다.
현실원칙의 제어를 받지 않은 쾌락원칙의 솔직한 토로는 혼비백산하게 만들지 않고, 은밀한 공감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은밀한 이유는 추상과 논리를 경유하지 않고 남자-여자를 잇는 사적인 회로를 거치기 때문이다. 시를 쓰느라 낑낑대며 언어를 메치고 되치며 은유와 상징의 좁고 복잡한 우회로를 통과하는 건 때로 시에 대한 매혹을 반감시킨다.
반성(reflexive)이 지나치면 요상한 시가 되기도 한다. 그녀의 시를 읽으며 이제 막 중년으로 접어든 여자의 어찌할 수 없는 욕망을 마주하는 건, 내 안의 그것을 일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녀의 시로 인하여 잃어버린 생기를 되찾고 “마지막 연애의 상상”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최영미 시를 보며 그런 몽상에 잠시 젖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책장을 덮고 눈을 들어보니 시커먼 사내들이 튀어나온 배를 흔들며 지나가고, 숙취로 얼굴이 벌건 아저씨들이 이빨을 쑤시고 앉아 있다니. 허망하여라, 내 우울한 몽상이여, 5월 한낮의 백일몽이여.
...
오기로 버티던 그때 그시절 / 최영미
오기로 버틴 그때 그시절 항상 그렇게 살고 싶다
서른살이었을 때, 나는 내 삶이 벼랑 끝에 와 있다고 느꼈다. 당시 난 대학원에 휴학계를 내고,어느 자그마한 사회과학 출판사에 어렵게 취직해 막 일을 배우고 있었다.
입사한 지 석달이 겨우 됐을까 말까. 며칠간의 휴가가 끝날 즈음 회사에 전화를 걸어보니, 이제 나올 필요가 없단다. 그 사이에 사장이 바뀌며 내가 '짤렸다'는 말이었다.
'내가 짤렸다'는 게 실감이 나기도 전에, 난 그무렵 몇달째 사귀던 남자에게서 일방적으로 '짤리고' 만다.
실직한지 한 두어 달 쯤 지나서였다. 며칠 째 연락이 없던 그에게서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이제 그만 만나는 게 좋겠다."
아무런 설명도 변명도 없이 짧게 용건만 말하는 그에게 나 또한 짧게 "알았다"고 말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참담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즈음 집안 사정이 엉망이었다. 세자매의 장녀로서 서른이 다 되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이렇다 할 직업도 없이 놀고 먹는 나는 기울어가는 우리 집의 혹이며 미운 오리새끼였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 내가 채워야 할 하루의 시간들이 먼지처럼 빼곡이 밀려와 방 한구석에 쌓였다.
답답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 한두 사람과 이따금씩 전화통화를 하는 게 세상과 나를 잇는 유일한 끈이었다.
바깥으로 직접 뚫린 창문이 없어 대낮에도 어두침침하던 방에서 나는 낮을 밤처럼, 밤을 낮처럼 살았다.
담배연기만 자욱하던 방에 감금된 채 하루하루를 죽이던 어느 날, 어머니가 내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셨다. 그러더니, 다짜고짜로 그 때까지도 이불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뭉기적대던 딸년의 발치를 발로 툭툭
치시며 말씀하셨다.
"네 인생은 실패다. 나이 서른에 네가 남자가 있냐 애가 있냐. 돈이 있냐 명예가 있냐. 넌 이제까지 뭐하고 살았니?"
실-패. 당신께서 불쑥 던진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송곳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
그날부터 난 서른살을 앓았다.
깃털처럼 한없이 가벼워지다가도 어느 순간,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무겁게 추락했다. 그동안 말만 듣던 디스코텍에 가서 혼자 미친듯이 춤을 춘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난 냉정하게 내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하고 싶었다. 내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그래서 얻은 건 무엇이고 잃은 건 무엇인지….
나는 나의 무게를, 내 삶의 무게를 세상의 저울에 달아 계량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숨막히는 이 집을 벗어나 어딘가로 가야 했다.
더 이상 돈 못 벌어온다고 어머니에게 구박당하고, 동생들에게 멸시당하며 눈칫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서른살이었을 때, 나는 신림동의 어느 고시원에 있었다. 고시공부를 하려고 들어간 게 아니라 달리 있을 데가 없어서였다. 그 당시 고시원은 서른이 다 된 여자에게 가장 싸고 안전한 숙소였다.
한달에 20만원으로 하루 세끼 먹여주고 재워주고 독방에다 바깥으로 통하는 창문도 있는, 그곳은 내게 천국이었다. 친구에게서 빌린 돈으로 다섯달치 방세를 선불하고 나니 수중엔 얼마 남지 않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지독한 독감에 걸렸는데 쌍화탕 하나 사먹을 돈이 없었다. 열이 펄펄 끓는 몸을 끌고
헌책방에 가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팔아 천원짜리 지폐를 손에 쥐었을 때의 쓰라린 감격이란…. 그러나 나는 그 시간들을, 이십에서 삼십에 이르는 그 가파른 세월을 잃어버린 것만은 아니었다.
그해 가을에서 겨울까지, 완벽하게 혼자가 되어 나는 쓰라린 청춘을 회상하며 최초의 시들 을 뱉어냈다.
그 핏덩이같은, 상처받은 짐승의 비명같은 시들이 모여 어찌어찌 하여 등단을 하고 시집을 펴내게 되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나는 오랜 실업자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시인이 되었다.
그 제목과 달리, 내겐 진짜 잔치가 시작된 셈이다. 남이 차려준 밥상이 아니라 내가 손수 재료를 선택하고 요리한 진정한 밥상. 서른은 내게 그런 나이였다.
올해로 내 나이 서른 아홉. 마흔을 코 앞에 둔 지금, 가끔씩 난 내가 아직도 서른살이라고 느낀다. 서른살처럼 옷을 입고 서른살처럼 비틀거리고 서른살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 흔한, 그 잘난 희망이 아니라 차라리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질길 절망을 벗삼아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아무 것도 붙잡을 것이 없어 오로지 정든 한숨과 환멸의 힘으로 건너가야 했던 서른살의 강. 그 강물의 도도한 물살에 맞서 시퍼런 오기로 버텼던 그때 그 시절이 오늘밤 사무치게 그립다.
1999년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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