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문학의 향기/♣ 영상시

눈오는 밤에 / 김용호

by kimeunjoo 2011. 1. 10.

 

.

 

사진 문근식 시인

 

 

 

 

눈오는 밤에 / 김용호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를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바깥엔 연방 눈이 내리고

오늘밤처럼 눈이 내리고.

 

다만 이제 나 홀로

눈을 밟으며 간다.

 

오우버 자락에

구수한 할머니의 옛 얘기를 싸고,

어린 시절의 그 눈을 밟으며 간다.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시집 {시원 산책}, 1964)

 

 

 

 

주막에서 / 김용호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 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의 슬픈 노정이 집산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의 있는 송덕비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세월이여!

 

소금보다도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빗긴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런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