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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세월이 가면 - 시: 박인환

by kimeunjoo 2010. 5. 1.
 ★  댄디보이...박인환 ★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얼굴의
박인환시인은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상동리 159번지에서 태어나
3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훤칠한 키에 수려한 용모의 美男 詩人 박인환(朴寅換)은 
                                                       당대 문인 중에서 최고의 멋쟁이 댄디보이였다고 한다.
 
술집「銀星」에서 외상값 때문에 작사했다는 세월이 가면...
이 詩가 노래로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9·28 수복 이후에 피란갔던 문인들이 서울로 돌아왔을 때 朴寅煥 등을 비롯한
한 떼의 친구들은 명동에 둥지를 틀었다.
 
폐허가 된 명동에도 하나 둘 술집이 들어서고 식당이 들어서서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겨나게 되었다.
당시 탤런트 崔佛岩(최불암)의 모친은 銀星(은성)이란 술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박인환 등이 밀린 외상값을 갚지도 않은 채 계속 술을 요구하자 술값부터 먼저 갚으라고 했다.
이때 박인환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펜을 들고 종이에다 황급히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은성」 주인의 슬픈 과거에 관한 시적 표현이었다.
 
작품이 완성되자 朴寅煥은 즉시 옆에 있던 작곡가 李眞燮(이진섭)에게 작곡을 부탁하였고
같이 술을 마시고 있던 영화배우 나애심이 흥얼거렸던 그 노래 ... 
 
한 두 시간 후 나애심과 송지영은 돌아가고 임만섭, 이봉구 등이 합석을 했다.
테너 임만섭이 그 우렁찬 성량과 미성으로 이 노래를 정식으로 다듬어서 불러,
길 가는 행인들이 모두 이 술집 문 앞으로 모여드는 기상천외의 리사이틀이 열렸다.
마른 명태를 앞에다 놓고 대포잔을 기울이면서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부 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박수를 보내는 많은 행인들―.
그것은 마치 낭만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은 순식간에 명동에 퍼졌다.
그들은 이 노래를 명동 엘리지라고 불렀고 마치 명동의 골목마다 스며 있는
외로움과 회상을 상징하는 듯 이곳 저곳에서 이 노래는 불리어졌다
 
이렇듯,  깨어진 유리창과 목로주점... 초라한 술집 "은성"에서 즉흥적으로 탄생한 것이
오늘까지 너무나도 유명하게 불려지고 있는 「세월이 가면」이다.
.
이 노래를 듣던 「은성」 주인은 기어이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밀린 외상값은 안 갚아도 좋으니 제발 그 노래만은 부르지 말아 달라고 도리어 애원하기까지 하였다.
이 일화는 이른바 「명동백작」으로 불리던 소설가 李鳳九(이봉구)의 단편 「명동」에 나오는 이야기다.
 
"세월이 가면"은 명동의 허름한 대폿집에서 누구나의 가슴 속에 있지만
미처 명확한 단어로 표현하지 못한 "그 눈동자와 입술" 이란 시어을 발굴해 냈다
 
 이「세월이 가면」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애절한 이야기가 하나 더 담겨져 있다
이 시를 쓰기 전날 박인환은 십년이 넘도록 방치해 두었던 그의 첫사랑의 애인이 묻혀있는
망우리 묘지에 다녀왔다.   그는 인생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

사랑도,  시도,  생활도,  차근 차근 정리하면서 그의 가슴에 남아 있는 먼 애인의
눈동자와 입술이 나뭇잎에 덮여서 흙이 된 그의 사랑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순결한 꿈으로 부풀었던 그의 청년기에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떠서 영원히 가슴에 남아 있는 것,
어떤 고통으로도 퇴색되지 않고 있던 젊은 날의 추억은 그가 막 세상을 하직하려고 했을 때
다시 한번 그 아름다운 빛깔로 그의 가슴을 채웠으리라
그는 마지막으로 영원히 마지막이 될 길을 가면서 이미 오래 전에 그의 곁에서 떠나간
연인의 무덤에 작별을 고하고 은밀히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아름다운 에피소드가 있었던 그 날 밤.
'목마와 숙녀'의 시인, '명동백작' 박인환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만 30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는 죽어가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 가슴이 답답해"라는 말을 내뱉었다고 한다.
 
 
   

 

세월이 가면  /  시 박인환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눈비가 내려도

나는 저 유리창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마른잎에 덮혀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01.박인희 "세월이 가면"

                     
                                                        
                     

                      표면적으로 전쟁을 상기시켜주는 말이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 시는 흔히 전쟁과 무관한 소녀적 감상주의의 시라고 생각되곤 한다. 그러나 이 시의 바탕에는 전쟁의 상처와 상실감이 진하게 깔려 있는 시이다. 이 시가 전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박인환으로 하여금 명동황제라는 별칭을 갖게 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전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잃어버린 사랑과 되찾을 수 없는 과거를 생각케 하고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 시에 대하여 강계순은 평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아! 박인환, 문학예술사, 1983. pp. 168-171)
                      1956년 이른 봄 저녁 경상도집에 모여 앉은 박인환, 이진섭, 송지영, 영화배우 나애심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이 몇 차례 돌아가자 그들은 나애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졸랐지만 그녀는 좀체 부르지 않았다. 그 때 갑자기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쓰기 시작햇다. 그 시를 넘겨다 보고 있던 이진섭도 그 즉석에서 작곡을 하고 나애심은 흥얼 흥얼 콧노래로 그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깨어진 유리창과 목로주점과도 같은 초라한 술집에서 즉흥적으로 탄생한 것이 오늘까지 너무나도 유명하게 불려지고 있는 「세월이 가면」이다.
                      한 두 시간 후 나애심과 송지영은 돌아가고 임만섭, 이봉구 등이 합석을 했다. 테너 임만섭이 그 우렁찬 성량과 미성으로 이 노래를 정식으로 다듬어서 불러, 길 가는 행인들이 모두 이 술집 문 앞으로 모여드는 기상천외의 리사이틀이 열렸다.
                      마른 명태를 앞에다 놓고 대포잔을 기울이면서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박수를 보내는 많은 행인들―. 그것은 마치 낭만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은 순식간에 명동에 퍼졌다. 그들은 이 노래를 명동 엘리지라고 불렀고 마치 명동의 골목마다 스며 있는 외로움과 회상을 상징하는 듯 이곳 저곳에서 이 노래는 불리어졌다.
                      이 「세월이 가면」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애절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 시를 쓰기 전날 박인환은 십년이 넘도록 방치해 두었던 그의 첫사랑의 애인이 묻혀 있는 망우리 묘지에 다녀왔다..... 그는 인생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랑도, 시도, 생활도 차근 차근 정리하면서 그의 가슴에 남아 있는 먼 애인의 눈동자와 입술이 나뭇잎에 덮여서 흙이 된 그의 사랑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순결한 꿈으로 부풀었던 그의 청년기에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떠서 영원히 가슴에 남아있는 것, 어떤 고통으로도 퇴색되지 않고 잇던 젊은 날의 추억은 그가 막 세상을 하직하려고 했을 때 다시 한번 그 아름다운 빛깔로 그의 가슴을 채웠으리라.
                      그는 마지막으로, 영원히 마지막이 될 길을 가면서 이미 오래 전에 그의 곁에서 떠나간 연인의 무덤에 작별을 고하고 은밀히 얘기하고 싶었다....  

                    ☆  박인환 "세월이 가면"에 대하여


                     박인환의 시작(詩作) 활동 마지막 시기의 것으로 {목마와 숙녀}와 함께 대표작으로 꼽힌다. 명동 어느 술집에서 작가는 이 시를 읊었고, 친구 김진섭이 즉흥적으로 작곡하였다는 에피소드와 함께 노래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샹송 스타일의 곡을 붙여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시는 낭만적 시의 정수라 할 만하다.
                    이 시는 전쟁을 통해서 맛본 비운과 불안함에서 비롯되는 좌절감과 상실감을 노래하고 있다. 잃어버린 기억을 더듬어 보헤미안처럼 고뇌하고 방황하는 시인의 찢긴 삶의 모습이 도시적 이미지를 통해 간결하게 드러나고 있다.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박인환이 불안한 시대 의식과 위기감, 허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한 잔의 술과 이 같은 낭만적 시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를 우수 어린 시인으로 만든 것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감상적 성품이라기보다는 시대적 운명일 것이며, 그에게 <세월이 가면>과 같은 시는 커다란 정신적 위안제가 되었을 것이다.
                    3년간이나 계속된 전쟁 속에서 도시는 온통 폐허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살아 남은 사람들은 삶의 가치를 상실하고 철저하게 상호 무관심한 개인 주의적 경향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러한 황폐한 분위기에서 시인은 따스한 인간애에 목이 말랐을 것이고, 세월에 따라 흘러간 사랑이 그리웠을 것이며 그 사람과 사랑을 나누던 '유리창 밖 가로등 / 그늘의 밤'과 '여름날의 호숫가'와 '가을의 공원 / 벤취'를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갈 수록 더욱 황폐해 가는 전후(戰後) 도시적 분위기에서 그의 가슴은 점점 서늘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사람 이름이 잊혀지고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그 눈동자와 입술은 언제나 서늘한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애뜻한 이 사랑 노래는, 영원히 현대인들에게 신선한 감동과 가을비 같은 촉촉한 서정성을 전해 주며 길이 남아 있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 시는 구체적인 이미지 제시를 통하여 시인의 체험의 실체를 보여 주는 대신, '그 사람'이 떠나버린 상실의 아픔과 슬픈 자아의 모습이 전면에 나타남으로써 애상적인 분위기가 주조를 띤다.
                    참담한 전쟁을 통해서 겪은 비운과 시대적 불안함에서 비롯되는 삶의 중압감은 시인으로 하여금 체념과 무력감에 젖게 하며, 그의 시는 쉽사리 감상에 빠지고 만다. '그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가슴에 남은 추억을 읊조리며 방황하는 화자는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한다. 도시적 소재와 문명어를 통해 삶의 허무를 체념적 감상주의로 노래하고 있다. 특히, '유리창', '가로등', '공원', '벤치' 등의 시어는 후반기 동인들의 시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것인데, 박인환은 도시와 문명과 현실에서 시의 테마와 언어를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神)을 상실한 시대, 삶의 지향성을 잃은 상황에서 화자 '나'는 가슴에 남은 옛 추억과 아름다운 환상만을 떠올리며 후미진 도심(都心) 밖 언저리를 거닐면서 허무에 젖어 보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연의 '서늘한'은 허무 의식과 상실의 슬픔이 비장감으로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박인환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이 시의 화자 역시 아름다웠던 시절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통해 어두운 시대가 안겨 준 상실의 슬픔과 고뇌를 밟으면서 방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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