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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목마와 숙녀 - 시:박인환/낭송:박인희

by kimeunjoo 2010. 5. 1.

 

  

영국의 유명한 여류 소설가인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가 형식의 시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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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와 숙녀

 

(박인환 시, 박인희 낭송)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少女)는

정원(庭園)의 초목(草木) 옆에서 자라고

문학(文學)이 죽고...

인생(人生)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作別)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未來)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木馬) 소리를 기억(記憶)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雜誌)의 표지(表紙)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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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3월의 어느날, 몇몇 문인과 음악인이 명동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거나해질 즈음

시인 박인환(朴寅煥)이 즉석에서 휴지에 쓴 한 편의 시를 동석한 작곡가 이진섭에게 건네자,

작곡가는 단숨에 그린 악보를 옆자리의 나애심에게 전달하며 노래를 청한다.

세월이 가도 잊혀지지 않을 노래 ‘세월이 가면’은 이렇게 탄생했다.
박인환은 ‘명동의 백작(伯爵)’으로 불릴 만큼 당대의 멋쟁이였다.

훤칠한 키, 수려한 외모 게다가 한껏 멋을 부려 명동을 찾을 때면 명동은 언제나 그를 반겼다.

박인환은 다방 ‘동방싸롱’ 혹은 유명무명의 술집에서 술과 낭만 그리고 문우(文友)들과 어울리며

현실의 고통을 시와 술로 삭였다. 책

과의 인연도 남달랐다. 책을 유산지나 셀로판지에 씌워가지고 다닐 정도로 애서가였고,

해방후에는 2년간 파고다공원 근처에 마리서사(茉莉書肆)라는 서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가 숨진 곳도 지금의 교보문고 후문쯤에 있었으니 죽어서까지 책과의 인연을 이어간 셈이다.
박인환이 “답답해, 생명수(약)를 다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심장마비로 요절한 것은

1956년 3월20일, 30세 때였다.

이상(李箱)을 기린다며 사흘간 쉬지않고 술을 마신 것이 죽음으로 몰고간 것이다.

지인들은 그가 평소 좋아했던 조니워커 술과 카멜 담배를 시신과 함께 망우리에 묻었다.

 

아픈 이별이 추억으로 남기 위해서는 세월이 필요하다. 이별 바로 뒤에는 미련이지만 그 미련 뒤에는 환멸이다. 그러나 다시 세월이 흘러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그 사람의 초롱한 눈매와 뜨거운 입술의 감촉은 다시 아련한 그리움으로 살아나 때때로 가슴을 적신다.

 

56년 이른 봄, 명동의 한 대폿집에 모여 앉은 박인환, 이진섭, 송지영, 나애심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곳이 박인환 등이 자주 드나들던 경상도집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동방싸롱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최불암 어머니가 운영하던 은성이라는 술집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술을 마시던 박인환이 즉흥시를 쓰자 옆에 있던 작곡가 이진섭이 그자리에서 곡을 붙였다. 나애심에게 부르기를 청했으나 그녀는 거절했고 송지영과 먼저 돌아갔다.

이후 명동백작 이봉구와 함께 술자리에 합석한 테너 임만석이 이 노래를 부르자, 밤이 깊은 명동의 대폿집 앞 골목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듣고 모여들여 박수를 쳤다.

 

시인 박인환

 

 

 

박인환는 이 시<세월이 가면>을 쓰기 전날 십년이 넘도록 방치해 두었던 그의 첫사랑이 묻혀 있는 망우리 묘지에 다녀왔다.

가슴속에 서늘하게 남아있던 그 눈동자와 입술이, 나뭇잎이 흙에 덮혀 사라져 가는 것을 목도하였다.

 

이 곡이 완성되던 날 낮부터 취해있던 박인환과 이진섭은 단성사에서 상영중인 롯사노 브릿지와 케서린 헵번 주연이 영화 <여정>을 보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다시 외상술을 마시며 이 노래를 불렀다.

 

사흘 뒤 김훈에게 자장면을 한그릇 얻어먹은 박인환은 술에 만취한 상태로 잠을 자다가 31살의 나이로 죽었다.

세탁소에 맡긴 봄 외투도 돈이 없어 못찾고 두꺼운 겨울 외투를 그대로 입은 채였다.

 

그가 명동을 영영 떠나던 날 친구들은 담배와 조니워커를 그의 관 위에 부어 주었다.

 

죽기 며칠 전 박인환은 술집 모나리자에 술값 대신 맡긴 만년필을 찾아다가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다'며 자신을 경멸했던 그의 친구 시인 김수영에게 주고 갔다. 김수영과 박인환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가 시의 관점이 달라 일방적으로 김수영에게 절교를 당한 상태였다.

 

 

블로그 <앨리스의 화려한 생애>와 <연지 동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1956.03.20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 사망

 

 

1956년 3월 20일 시인 박인환이 사망했다. 30세였다.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밖에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시는 많은 한국인들의 가슴에 영원하다. “생전 좋아하던 그것을 마음껏 사 주지 못한 게 한이 된다고 김은성이 조니워커 한 병을 들고 와 죽은 박인환의 입에다 부어주고 자기 입에다 따르자, 들러리 친구들이 너도 나도 박인환의 입에 술을 부어주고 대작이나 하듯이 마셨다…”

 

소설가ㆍ언론인 이봉구(1916~1983)는 <명동백작>에서 썼다. 그렇게 술 좋아했던 ‘명동백작’ ‘댄디 보이’ 박인환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월이 가면’이 명동 거리를 채우며 울려 퍼졌다고 한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세월이 가면’은 박인환이 죽기 얼마 전에 쓴 시다. 명동의 대포집에서 가수 나애심, 작곡가 이진섭, 언론인 송지영 등과 술잔을 기울이던 박인환이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했지만 계속 사양하자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을 넘겨다 보던 이진섭이 즉석에서 곡을 붙였고, 나중에 이봉구와 함께 합석한 테너 임만섭이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하자, 지나던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박수를 보냈다. 이봉구는 이 불후의 ‘명동 샹송’이 탄생하던 그 때를 “명동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라고 회상하고 있다.

 

<명동백작>은 1950~60년대의 명동, 그곳에서 문화와 예술과 술과 담배로 지샜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시 ‘목마와 숙녀’에서 ‘페시미즘의 미래’를 물었던 박인환, 그를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다”고 대놓고 경멸했지만 절친한 친구였던 김수영, 그리고 김관식 이중섭 오상순 전혜린 등등이 그들이다.

박인환이 죽고, 10년 후 전혜린이 은성 주점에서 술을 마신 다음날 죽고, 하나둘 그들이 떠나면서 명동도 사그라졌다. 다시 오지 않겠지만, 그려보면 가슴 저릿해지는, 우리 문화사의 아련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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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와 숙녀>

 

박인환(1926~1956)은 '불행한 시인'이다.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이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한국말에 그리 능숙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다.(시인 김수영) 그래서 외래어와 이미지를 가득 담은 시를 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시대가 그러했다. 식민지 청년으로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집에서는 조선말을 쓰는 모순적인 환경에 살았다. 성장기를 그렇게 황폐하게 보냈기에 과잉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했을 것이다.

 

죽음도 허망했다. 1956년 오늘, 30세의 한창때 술 마시고 귀가하다 거리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 몸이 약한데도 술을 좋아했다. 친구들은 돈이 없어 실컷 마시지 못했던 술(조니 워커)을 관에 부어주며 슬퍼했다. 그는 갔어도 시는 영원히 남았다.

 

봄인데도 스산한 추위를 느끼게 하는 요즘, 박인희가 곡을 붙여 부른 '세월이 가면'이 듣고 싶다.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박인환[ 朴寅煥 ]

1926∼1956. 시인. 본관은 밀양(密陽). 강원도 인제 출신. 아버지 광선(光善)과 어머니 함숙형(咸淑亨)의 4남 2녀 중 장남이다. 1939년 서울 덕수공립소학교를 졸업하고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41년 자퇴하고, 한성학교를 거쳐 1944년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해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8·15광복으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그 뒤 상경하여 마리서사(茉莉書肆)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김광균(金光均)·이한직(李漢稷김수영(金洙暎)·김경린(金璟麟)·오장환(吳章煥)·김기림(金起林) 등과 친교를 맺기도 하였다. 1948년 서점을 그만두면서 이정숙(李丁淑)과 혼인하였다. 그 해에 자유신문사, 이듬해에 경향신문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1949년에는 김병욱(金秉旭)·김경린 등과 동인지 ≪신시론 新詩論≫을 발간하였으며, 1950년에는 김차영(金次榮)·김규동(金奎東)·이봉래(李奉來) 등과 피난지 부산에서 동인 ‘후반기(後半紀)’를 결성하여 모더니즘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51년에는 육군소속 종군작가단에 참여한 바 있고, 1955년에는 직장인 대한해운공사의 일 관계로 남해호(南海號) 사무장의 임무를 띠고 미국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955년 첫 시집 ≪박인환선시집 朴寅煥選詩集≫을 낸 뒤 이듬해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의 시작 활동은 1946년에 시 〈거리〉를 ≪국제신보 國際新報≫에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1947년에는 시 〈남풍〉, 영화평론 〈아메리카 영화시론〉을 ≪신천지 新天地≫에, 1948년에는 시 〈지하실 地下室〉을 ≪민성 民聲≫에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시작 활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1949년 김수영·김경린·양병식(梁秉植)·임호권(林虎權) 등과 함께 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은 광복 후 본격적인 시인들의 등장을 알려주는 신호가 되었다. 1950년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밤의 미매장(未埋藏)〉·〈목마와 숙녀〉 등을 발표하였는데, 이런 작품들은 도시문명의 우울과 불안을 감상적인 시풍으로 노래하여 주목을 끌었다.

 

1955년에 발간된 ≪박인환선시집≫에 그의 시작품이 망라되어 있으며 특히 〈목마와 숙녀〉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서 우울과 고독 등 도시적 서정과 시대적 고뇌를 노래하고 있다. 1956년 작고 1주일 전에 쓰여진 〈세월이 가면〉은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기도 하였다. 1976년 그의 20주기를 맞아 장남 세형(世馨)이 ≪목마와 숙녀≫를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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