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 김성춘
묘비명 1
내가 본 묘비명 중에
'먼길 와 주셨는데 일어나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유머러스한 어느 문필가의 그것보다
어느 무명인의
'어물어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라는
묘비명이 더 가슴을 친다.
속절없이, 가버린
생의 오후 시간표 앞에서
내 무덤을 생각하다
무명인의 묘비명을 생각한다.
창밖 흐르는 풍경을 본다.
눈 맑은 새 한마리 푸른 속으로
정처없이 발을 내딛고..
비밀 / 김성춘
너는 청자빛 추억의 상자다.
너는 봄날 복숭아꽃 나무 아래 떠 있는 아득한 섬이다.
너는 물푸레나무 숲길에서 만난 물푸레빛 옹달샘이다.
너는 내 호주머니 속에서 아직도 짤랑대는 가랑잎 소리다.
너는 12월의 변두리 그 골목 입구에서 만난 첫 눈발이다.
너는 시간의 눈썹 끝에서
한 생애가 지워져도 끝내 소멸하지 않는
알 수 없는 불안과 상처의 얼굴로
오오 너는 오늘도 흰구름 위에 있다
청자빛 추억의 상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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