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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너를 찾는다 - 오세영

by kimeunjoo 2010.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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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찾는다

바람이라 이름한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들
무엇이라 호명(呼名)해도
다시는 대답하지 않을 것들을 향해
이제 바람이라 불러본다
바람이여
내 귀를 멀게했던 그 가녀린 음성
격정의 회오리로 몰아쳐와 내 가슴을 울게 했던
그 젖은 목소리는 지금 어디 있는가
때로는 산들바람에, 때로는 돌개바람에
아니 때로는 거친 폭풍에 실려
아득히 지평선을 타고 넘던 너의 적막한 뒷모습
그리고
애잔한 범종(梵鐘)소리, 낙엽소리
내 귀를 난타하던 피아노 건반
그 광상곡의 긴 여운
어느 먼 변경 척박한 들녘에 뿌리내려
민들레, 쑥부쟁이, 개망초
아니면 씀바귀 꽃으로 피었는가
말해다오
강물이라 이름한다
이미 잊혀진 것들
그래서 무엇이라 아예
호명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을 향해
이제 강물이라 불러본다
강물이여
한 때 내 눈을 멀게 했던 네 뜨거운 시선
열망의 타오르는 불꽃으로
내 육신을 황홀하게 달구던 그 눈빛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때로는 여울에, 때로는 급류에 아니 때로는
도도히 밀려가는 홍수에 실려
아득히 수평선을 가물가물 넘어가던 너의
쓸쓸한 이마
그리고 어디선가 꽃잎이 지는 소리, 파도소리
철썩이는 잔 물결의 여운
어느 먼 외방의 썰렁한 갯벌에 떠밀려
물을 향해 언제나 귀를 쫑긋 열고 살아야만 하는가
해파리, 민조개, 백합 아니
온종일 휘파람으로 울다 지친 소라
말해다오
구름이라 이름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들
무엇이라 호명해도
다시 이룰 수 없는 형상들을 향해 나는
이제 구름이라 불러본다
구름이여
한 때 내 맑은 영혼의 하늘에 푸른 그늘을 드리우던
오색 빛 채운(彩雲)
그 빛나던 무지개는 지금 어디 있는가
때로는 별빛에 실려, 아니 어스름한 어느 저녁 답
스러지는 한 조각 노을에 실려
아득히 먼 허공으로 희부옇게 사라지던 너의 그
두 빈 어깨 그리고
어디선가 내리치는 마른번개
스산하게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어느 먼 이역의 하늘로 불려가
흩뿌리는 싸락눈, 진눈깨비 아니
동토(凍土)에 떨어져 나뒹구는 우박이 되었는가
말해다오
너를 찾는다.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강물이라는, 구름이라는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해 저무는 가을 저녁
찰랑대는 강가의 시든 풀밭에
홀로 망연히 앉아
글/오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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