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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이상국

by kimeunjoo 2009. 12. 28.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이상국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 이상국,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창비,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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