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롱크스 장터를 간 시인 - 고형렬
- 뉴욕의 P에게
한마리 날개 달린 수탉이 퍼덕이고 있었다 철망 안에 혼자 남았다 친구들은 다 팔려갔다 오늘 아침, 여럿이 나왔었다
한 남자는 신문을 접어들고 어슬렁, 저쪽에서 다가온다 유색인종이다 앞에서 멈춘다 이 기억은 죽음이 늦어지고 있던 이미 죽은 자의 전생의 문자다
한 남자는 앞에 다가가 앉는다 수탉이다 볏은 피멍이 들고 발톱은 늙었다 추억만 남았다 그는 장터에 뭘 사러 온 게 아니었다 생명 같은 것을 살 생각은 더더욱 없다 이것은 뒤에 미소짓고 앉은 주인의 대뇌피질의 움직임
근육질의 날개를 덮고 있다 놈은 빤히 남자의 눈을 들여다본다 깃털이 화려하고 붉고 검다 인간보다 더 빨간 눈, 서로의 운명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별처럼 반짝인다 이건 한 남자의 기억이다 인간과 수탉은 소통되지 않는다 그때 수탉은 그의 시전문 잡지를 엿본다 수탉도 영문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을 남자는 모르고 있다 수탉이 꾸르륵 하고 가래 소리를 냈다 마치 개가 짖으려는 듯, 그 소리는 창자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등 뒤에서 큰 영어 소리가 들렸다 저놈 주세요 수탉의 영혼이 쳐다본 마지막 말
남자는 십분을 남쪽으로 걸어갔다 버스를 타고 전철로 갈아타고 또 걸어 돌아왔다
집 안에 방문과 냉장고와 책 따위가 서 있다 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받을 겨를도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눈물, 어른거렸다 도시가 캄캄하다 스위치와 등은 연결되어 있다 도시는 방의 안쪽 같았다
브롱크스 장터는 흐렸다 멀리서 눈이 날아오는 것 같았다 도시가 낮아졌다 그 너머 마천루도 바다도 브롱크스 장터 너머였다 타자의 상상도 지워진다
아직도 장터의 한낮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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