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문학의 향기/♣ 시인뜨락

신사임당 申氏

by kimeunjoo 2009. 7. 5.


         

         


         思 親 어머님 그리워 - 신사임당 申氏

         
         
         
           天里家山萬疊峯(천리가산만첩봉) 
          산첩첩 내고향 천리언마는
          歸心長在夢魂中(귀심장재몽혼중)
          자나깨나 꿈 속에도 돌아가고파
          寒松亭畔雙輪月(한송정반쌍륜월)
          한송정 가에는 외로이 뜬 달
          鏡浦臺前一陣風(경포대전일진풍)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沙上白鷺恒聚散(사상백로항취산)
          갈매기는 모래톱에 헤락모이락
          波頭漁艇各西東(파두어정각서동)
          고깃배들 바다 위로 오고가리니
          何時重踏臨瀛路(하시중답임영로)
          언제나 강릉 길 다시 밟아가
          綵服斑衣膝下縫(채복반의슬하봉)
          색동옷 입고 어머니 슬하에서 바느질할꼬?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이 시는 [사임당]께서
            서울 시댁(수진방)에 계실때
            
            늘 고향에 계신 
            늙은 어머님을 그리며 
            지은 것인데
             
            세월은 흘러도 
            변하지 않는 모정이 
            보는이로 하여금 
            애련함을 담은 글인가 합니다.
            신사임당 (1504∼1551)
            강릉 출신의 조선중기 여류 문인.
            
            서화가이며 대학자인 
            율곡 이이를 길러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모양처이다.
             
            19세 때 덕수 이씨인 
            감찰 이원수와 결혼하여
            서울, 강릉, 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 
            등지를 옮겨 살았다.
             
            사임당이 33세 되던해 
            이른 봄날 밤, 꿈에 
            동해에 이르니 
            선녀가 바닷속으로부터
             
            살결이 백옥 같은 
            옥동자하나를 안고 나와 
            부인의 품에 안겨주는 
            꿈을 꾸고 아기를 잉태하였고,
            
             다시 그해 
            12월 26일 새벽에도 
            검은 용이 
            바다로 부터 날아와
             
            부인의 침실에 이르러 
            문머리에 서려 있는 
            꿈을 꾸고 아기를 낳으니 
            
            그가 바로 
            셋째 아들 율곡 이이 선생이다.
            
            1551년(명종 6) 남편 
            이원수가 수운판관이 되어 
            관서지방에 가있던 사이 
            병이 위중하여 향년 
            48세로 돌아가셨으며,
            
            조정에서는 
            정경 부인을 증직 하였다.
            
            사임당은 항상 
            몸가짐을 조심하여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남편에게는 항상 
            올바른 길을 가도록 
            내조하였으며,
             
            7남매를 모두 
            훌륭하게 키웠다.
            
            그러면서도 
            시부모와 친정어머니를 
            잘 모셔 효녀로서도 알려졌다.
            
            신사임당은 
            천성이 온아하고 
            지조가 높았으며,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명민하여 
            시문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서예, 침공, 
            자수에 이르기까지 
            일가를 이루었다. 
            안견의 화풍을 
            이어받은 그림은 
            우리나라 최고의 
            여성 화가라는 평을 듣는다. 
            
            그림으로 채색화,묵화 등 
            약 40폭 정도가 전해지고 있는데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그림도 
            수 십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으로는
            자리도 (紫鯉圖), 산수도 (山水圖)
            초충도 (草蟲圖), 노안도 (蘆雁圖)
            연로도 (蓮鷺圖)
            요안조압도 (蓼岸鳥鴨圖)와
            6폭초서병풍 등이 있다.
            
            또한 
            '유대관령망친정','사친' 등의 
            한시가 널리 알려져 있다. 
            
            강릉 오죽헌에는 
            사임당의 유품인 
            당서 병풍을 비롯해서 
             
            산수도,노안도, 연로도, 
            매화도, 포도도, 초충도,
            자수 병풍 등 1백여점이
             
            율곡의 유품과 함께 
            보존 되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