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문학의 향기/♣ 영상시

나는 생이란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이기철

by kimeunjoo 2009. 6. 12.

           


          내 몸은 낡은 의자처럼 주저앉아 기다렸다
          병은 연인처럼 와서 적처럼 깃든다

          그리움에 발 담그면 병이 된다는 것을
          일찍 안 사람은 현명하다
          나, 아직도 사람 그리운 병 낫지 않아
          낯선 골목 헤맬 때 등신아 등신아
          어깨 때리는 바람 소리 귓가에 들린다

          별 돋아도 가슴 뛰지 않을 때까지 살 수 있을까
          꽃잎 지고 나서 옷깃에 매달아 둘 이름 하나 있다면
          아픈 날들 지나 아프지 않은 날로 가자
          없던 풀들이 새로 돋고
          안 보이던 꽃들이 세상을 채운다

          아, 나는 생이란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삶보다는 훨씬 푸르고 생생한 생
          그러나 지상의 모든 것은 한 번은 생을 떠난다

          저 지붕들, 얼마나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을까
          이 흙먼지 밟고 짐승들, 병아리들 다 떠날 때까지
          병을 사랑하자, 병이 생이다
          그 병조차 떠나고 나면, 우리
          무엇으로 밥 먹고 무엇으로 그리워 할 수 있느냐

           

           

          나는 생이란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 이기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