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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사랑굿 / 김초혜 121~ 183

by kimeunjoo 2013. 5. 29.

 

 

 

사랑굿 / 김초혜

 

121.
어리석은
의심은
저를 얽어 해치니
눈이 어두워져
그대 보지 못하리

서로 마음을
알지 못한다 해도

고통도
마음으로 이루었으니

그 마음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것

그대와 나
한마음이어
안 보이는 때문이리


122.
말없이 지낸다고
울고 있지 않은 건
아니오

생각만으로
눈물이 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요히
멀어져가오

미움이 살 수 없는
그대 마음 속의
무정(無情)을 헤아리며
이제야 알 것 같소
청정한 그늘 속을
걷게 하는
그대 뜻을


123.
좋으리라 생각했던
내일이
더 좋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속된 마음
모두 버리고
그대를 떠나
저물어가오

살면서 죽고 싶은
죽어도 살고 싶은
모순을 넘나들며
어질머리로
그대를 울어도

한 세월
그대는 나를 돌아 부는
바람이었소
남몰래 흐느끼는
머언 바람이었소


124.
우리의
오늘의 이별이
먼 만남이래도
아직은
떠날 때가 아닌 것을

사랑은 사랑으로 서럽고
사랑으로 기뻐도
흙이 되어 떠날 것을
바람 되어 만날 것을

그대의 어둠보다
더 깊은 어둠이
내게 기대어와도
그리움은 영원인 것을


125.
그대 만나고 싶은 날은
혼자서 내 길을 간다
못내 떨치고
돌아서지 않을
그리움으로 간다

사랑의 무덤 속에서
그대에게 입힌 상처
병으로 내게 와
봄비에 젖고

백년도 못 가는
고작 칠십의 생애
깊은 시름 안고
떠돌아야 하는가


126.
그대는
죽음을 몰아왔고
죽음은
행방불명이 된
자아를
살아나게 하였네

마침내
그대는
솟아오르는 나를
불꽃으로 얼게 해
비밀의
눈물이
되게 하였네

나보다
더한 것은 없는데
나를 버리고도
충만하면
그대는 온전한
기쁨이었네


127.
오늘은 오늘을 비우고
내일은 또
내일을 비우는데
무엇이 소용 있으리

걸친 것 다 벗어놓고
나도 강물에 섞여
함께
출렁이고 싶어라

마음속에 자라는
인간의 모습을
지워버리고
사람에서 떠난
휴식으로
숨어들고 싶어라


128.
해도
기울지 않고
달도
지지 않는
빛의 섬으로 가리

무너지는
모래성도
쌓지 않으며
내용없는
기다림도
물리치면서

고요하게
빛나는
아침이 와도
서리 속에
섰던 날을
꽃과 아니 바꾸리.


129.
그대와 나와의
경계에 걸린
무지개
그 무지개를
잃지 않기 위해
웃음만 보이고
뿌리는 감추고 살자

큰 날개도
맑은 노래도
가질 수 있지만
날을 수
있는 것은
새뿐이라고 믿자

한 사람은
한 사람을 믿고
물음이
대답이 되는
아픔을
허물처럼 벗어버리자


130.
가라
갈 대로 가라

혼돈의 새벽에서
깨어났을 ?
너는 내게
아무 가치도 아니었다
한숨이었고
몸을 떨게 하는
분노 였을 뿐

한숨을
분노를
꽃으로 가리던
무모하던 허무도
가라

내 영혼 속에서
그대를
절망으로
잠재우리라


131.
시간은
나를 괴롭히고
그 괴로움은
견뎌야만
벗어날 수 있는 것

노곤한 시간은 쌓여
신념을 잃게 하고
격정에 차게 해
바람만 불게 하고

나의 괴로움
우울한 떠돌이별 하나
되만들어
나를 가둔다


132.
허둥거리지도 말고
거짓된 마음도
내지 말고
나를 허물어뜨리며
새벽이 오면
그 새벽 속에서
스스로 태어나게 하소서

나와 다른
그대를
용납하도록
지난날은 잊고
신선한 가슴을
기슭삼아
생각은 언제나
새해 아침에
매어두게 하소서


133.
사슬로
감아도
이보다 더하랴

하루하루가
괴롭고
어렵더니
참고 견딤이
버릇 되어
도리어
어둠도 다정해라

새벽을 묶어놓고
아침을 기다려
서리 속에
서 있어도
죽어도 모를
사람의 마음

그대 목소리
내 마음에
감도는
이 허물을 어이하리


134.
그대
모르던 날에는
꽃망이 벙글어도
웃음이었소

울어 될 일은
울어버리고
웃을 일은
웃어 보였소

살아 있는
죽음도 몰랐고
거짓말이
참말인 것도
알 수 없었소

아침마다
새로이
태어나며
조그마한
하늘을
출렁이게 했었다오


135.
마음 깊숙이
들여다보지 말자

밀리지도
흔들리지도 않을
마음은
어쩌지 못해도
우리는
때때로
멈춰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서로의
간격을
확인하고
그 간격을
걸머지고

그리움을 넘어
아무도
건너지 못할
맑은 하늘을 건너자


136.
해도
기울지 않고
달도
지지 않는
빛의 섬으로 가리
무너지는
모래성도
쌓지 않으며
내용없는
기다림도
물리치면서
고요하게
빛나는
아침이 와도
서리속에
섰던 날을
꽃과 아니 바꾸리


137.
목발만
짚지 않았지
사실은
절름발이오
무너지기는 쉬웠어도
다시
일어서기 어려워
무릎은 녹아내리오
가까스로
견뎌온 해가
이지러질 수
없다 해도
노여움을 삭이며
먼 날을 끌어당겨
빛날 때 맞추어
떠나려 하오


138.
세상세상이
녹아 없어진 것 아니어라
잊지 못해도 잊은 체
잠깐 동안이어라

흔들리게 말아라
맑은 마음만
그대와 나
잘 다루어내리니
빛을 이루어
밝음을
일으켜 세우게 하라

그리움은
덜어내 숨기고
의심 없는 곳에서
주고받지 않는것


139.
언젠가는
알뜰한
목숨도
떠나가는데
그대 비록
내게서 멀어갔어도
괴롬에
마음을 태우지는 않으려오

잘 삭이면
웃음 되고
못 삭이면
울음 되는
세상에 흔한 이치
간절하게
생각하며
욕심 벗어버린 걸
후회하지 않으려오


140.
하늘이
땅에 무너져도
그대
해 되어 밝는
꿈을 꾸노라

물거품이라
알면서도
문득
내는 욕심
어리석어라

한마디로
모든 말
할 수 있어도
침묵으로
삼가는 말
병만 깊어라


141.
넘어뜨린다고
넘어지거든
넘어지거라

나았다 도지는
병이라면
깊이 병들게 하라

제 욕심에 얽혀
허물벗기 어려워도
무상(無常)에
머물게 하라

고통의 근본
버리게 되어
목숨 받은 일
고달퍼 않으리니


142.
버리고 찾는 것
모두가
덧없음이라
무심(無心)으로
돌아선 그대

깊은 가슴
열어 밝혀도
지난 시간
되찾을 수 없어
멀고 괴롬인 것을

어찌하면
편안하겠소
돌 위에
무릎끓어
모두
버리는 뜻
견디려 하오


143.
생각하니
세상의 일
분별로 이루어지는데
그대 옆
분별로는
머물 수 없으리

해 가리는 빛
세상에 없는데
어찌해
즐거운 성품
아주 버리게 하오

고통에 머물러도
싫은 줄 모르는
딱한 마음
허물덩이로 커지는데
허공 끝에 있는 그대여


144.
해는
새로운데
나는
그대 기억 속의
사람이오

다니거나
머물러도
간 데마다
따라와
해가 되고
달이 되는
그대

스스로
잊을 때까지
고요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145.
내 허물을 벗어버리면
다른 하늘이 보이고
저 하늘 저 너머
세상의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밤과 밤 사이
내게 스며들어
나를 잠기게 한
허무를 잠재우면

물이 바다로 가듯
즐거움도 슬픔도
빈 마음 되어
그대에게 이르고

앉을 곳이 설 곳이
없다 해도
해와 달이
빛을 잃을 때까지
어둠 속의 불행은
잊으며 살자


146.
그대는 단 하루도
나의 섬에
닻을 내리고
정박한 적이 없다
 
끝없는 어둠에 밀려
암초에 부딪혀도
새벽을 피해
어둠으로 숨어든다
 
무덤의 세월 속에서
잠깐 동안
나의 꿈이었던
그대
 
잊어버림만이
최선이니
내가 그대를 잊기 전
떠나라
  

147.
그대의 거짓에
기진해 운대도
빈말은 마오

시간과
세상이 없는 곳에서나
말만 훌륭함이
빛나는 것이니

죽은 듯
산 듯
울어 사는
목숨

침묵엔
침묵으로 답하며
이 고요를
어지럽히진 않으려오


148.
무심치 않으려는
생각도 없이
젊음도
목숨도
마침내는
머무름 없이
떠나가는데
무엇을 욕심내고
갈등하겠소

<나>라는 거만을
허물어뜨리고
눈에 덮이고
비에 젖어도
새 아침이 오면
새 아침 속에
다시
깨어나게 하소서


149.
나는
오늘도 춥다
갇혀서
흐르는 시간은
갇힌 채 흘고
나를 가두고
그대 떠나도
그대 속에 내가 있다

공상으로
상상으로
미움을 길러
해 저물고
밤이 들어도
그대는 나이 꿈이니
새벽은 일 년에
한 번이어도 좋다


150.
나의 가슴에
그대 모습
슬픔인 줄 알면서
그대는 평범하게
웃고 있다

기억하라
다시 기억하라
일백 번 아침이 와
살을 벗겨도
그대 위해 나를 버려
스스로 묶이인 것을

삶을 해치는
그대 생각
어둠에 묻는대도
빛 속에서
나는 또 어이 견디리


151.
가난한
인간세상을 벗어나
얽매었던
사슬을 풀고
마침내
내가 되려는데

내 비밀의
봉인(封印)을 뜯어
더 무거운 사슬로
얽어매는
그대는 무엇인가

가망없는
한계에 시달리면서
내 몫의 사슬을
온몸에 감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152.
그대 모습
비쳐드는
달은 나의 눈물이오니
머물 수 없는
그리움이어도
만날 길은
꿈길이 아니게 하소서

나누면 커지는
그리움이라
그리움에 걸려
또 넘어져도
오늘은
오늘의 눈물로
새롭게 타며
번번이
맹목이 되게 하소서


153.
그대의 무심함 속에서
목메어
떠나려 했던
그 가을입니다

그리움이 넘쳐도
빈 마음일 줄 알았는데
해마다 이맘때면
함께 살고
함께 죽고 싶은
서러운 그대여

들꽃이 피기도 전에
가을은
부질없이
그대 실어와
그리움의 불을 밝힘니다


154.
긴 견딤의
굴욕을
버리고
일어나라
일어나라

멈칫멈칫
망설이며
돌아서지 말고
속마음 풀어
거절의 의미를
보여다오

어둠이
마음 사이로
내려오며
허물고 있다
무너지고 있다


155.
백년도
못 가는 길에
그대
앞서지도 말고
뒤에 있지도 말며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누기로 하오

욕심은 괴로움이라
마음
좁고 작아져
생명을 줄여도

그대여
우리
해 지면
편안히 쉬고
다시
아침해 돋으면
서로를
빛나게 합시다


156.
우는 듯
웃는 듯
가을 하늘
별이 되자

고통 많고
즐거움 적어도
돌을 키우던
믿음인데

내색 한번 아니하는
그림자도
맑은 그대

길은 없어도
세상에 없는
우리가 되자


157.
미망에 빠져
허망으로 시드는
남은 목숨
두렵지 않은데

막힌 줄 알면서도
가던 길
멈추지도 못하고
물러나지도 못하는
어지러움

그대 어지러움에
실리면
옳고 그른 것
흐려져
천명(天命)에
따르는 길
모르게 되오


158.
어찌하면
있음과 없음을
같은 것으로
지닐 수 있으리

어둔 마음
끊어버리고
어둠을
나와도
어둠 속이어라

목숨 쉬지 못하듯
그대 생각
쉬임없어
천성마저
다치고

그대
떠남은
변화의 흐름일 뿐
있는 그대인 것을


159.
물은 물을 이기고
불은 불을
이길 수 있어도
나를 이기지 못해
그대 이길 수 없어라

깨어나
찾을 수 없는
꿈은
꾸지 않으려
욕심에 물들다가
놀라 깨어나오

여러 세상 중에
그대와의 세상
제일로 어려웠어도
고통도
고요히 견뎌냈어라


160.
낮에는 해가 되고
밤에는 달이 되어
나의 그늘을
쉬임없이 비추어
설움을 더 넓게 하는
그대

세상 걱정 많아
외롬을 깊게 해도
그대 의중의 빛
마음에 일어
밝게 비치니

어제의
의심벗고
오늘은
곤한 마음
쉬게 하소서


161.
내 죽음의
빛나는
대상이었던
그대여

이 가슴의
많은 무덤을
시간이 다시
살려낸다 해도

마음대로
앓지도 못하고
감추어놓은
상처를

자꾸
덧나게만 말고
더러는
아물려주기도 하오


162.
세상일이
꿈과 같음을 알아
실없던 일
다 떠나보내고
어두움 없이
지낸다 해도

그대가 흔들면
흔들리고
멈추게 하면
멈추어 서는 까닭을
나는 모르오

마음으로
그대 놓아버린 지
오래이면서
달 밝아도
울어버리는
이 그리움을
나는 모르오


163.
그대의 거짓은
그대의 거짓을
진실이게 하고

나의 진실은
나의 진실을
거짓이게 한다

진실 속에서의
거짓과
거짓 속에서의
진실의 차이는

그대 나 되어가고
나 그대 되어가는
거짓을 닮은
진실일 뿐이고
진실을 닮은 거짓일 뿐


164.
나날이
나는 죽어도
그대는
백번이고 태어나라

목숨보다 값진
죽음이
또 무덤을 만들어도
건성으로
웃어넘기는
그대

부질없어 꿈꾸던
불행을 마무리짓고
배웅도 없이
그대를 떠난다


165.
물이 흐르듯
그대에게
가는 마음
겹으로 흐르는데

눈으로
눈을 보고
마음으로
마음을 보아도

말로 할 수 없는
말의
말없는 표시로
맑은 허무를
그대에게 보내며

새로운 고뇌도
태연하게 감싸안을
따뜻한 능력을
나는 갖고 싶으오


166.
나는 압니다
남모르게
울게 하는
그대 뜻을

귀막고 가는
어두운
그대 마음속
그늘을
나는 압니다

눈물이어서
눈물에 젖는
눈부신 잘못을
나는 압니다

무덤에 불과한
그대와의 세월이지만
이 세상 끝에선
슬픔도 고통도
그리움일 줄
나는 압니다


167.
그대 앞에 서면
나를 의식 못하고
그대 그늘 속에
들어가 쉰다

노래도 버리고
두 영혼이
이룩하지 못한 꿈을
고통한다

단지 그대 까닭에
하루도 죽지 못하는
하루살이의 목숨
그대 있어도
혼자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운다는 것이다


168.
그대 마음을 열어
내 마음을
적시어주오
만남의
다른 의미가
나를 울게 해도
밤마다
내 가슴을 건너는
그대
어제는 쓰러지고
오늘은 일어서는
삶의 골짜기
깊기만 한데
차라리
넋이 되어
그대 따르고 싶은
이 무상 어이하리오


169.
그대 돌아가라
세상을 떠난
행복으로
그리움 잊었으니

웃음도
훙내내어보고
그대 변덕스러움도
눈감아보지만
저녁 그늘만
밀어다주는 그대

그대 있고
나 있음도
잠시뿐
덧없는 서로는
잊혀질 것을
그대여
얼굴 바꾸지 말고
그대로 떠나주오


170.
그대를 긍정하면
나를 긍정하게 되고
그대를 부정하면
나도 부정하게 되오

그대 말 한마디로
가슴에 넘쳐날
기쁨
모르지 않으면서
눈물도
되돌리는 그대

나의 눈물이
그대 속에서
죽어 흐르는
물방울이 아니게
그대 가슴에
눈물로 묻어주오


171.
혼란 속에서
하루를 보내며
멍에와 엮어진
그대와의 고리를
풀 수 없어 우노라

둥글다 하면
둥근 줄 알았던
그대의 의지는
나의 의지였는데
절망은
나만의 절망이라니

뒤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으려
서둘러
잠으로 들고 싶어라


172.
나 자신에게
풀려나도록
방화하는 영혼이여
나를 버려다오

삶을
아름답게 하는
추억은 두고
더는
서럽게 말고
그대 떠나주오

생명이 숨가빠
눈물로 살던 날을
마무리지으려 하니
부질없어
허망하기 이를 데 없으나
부디 잘 가오


173.
기쁨이나
확신이 없대도
우리는
하나의 슬픔으로
족하지 않소

공연히
고통을 키워
괴롭히고
괴로워하는 것
그만둡시다

해 뜨고
지는 것이
무슨 상관이오
노여움 앞에서도
서로를
눈물로 밝힙시다


174.
오늘은
그대를 만나
울고 싶다

울어도
돌아오지 않는 그대와
돌아설 수 없는
그대를

울 만큼 울면
떠날 줄 알았던 울음은
온몸에 실려지고
그대를 생각하면
또 울음이 된다

매일매일
나를 운 지 십수년
저 세상 것까지
이 세상에서
다 울어버린대도
눈물은 또 그리움일 것인가


175.
오늘부터 나는 그대를
몰라보게 될 것 같습니다
사방에서
그대 목소리 들려도
못 듣게 될 것 같습니다
그대는
나의 누구도 아니었지만
더이상 나를
고단하게 둘 수 없어
나를 돌아섭니다
네가 떠난 뒤
그대의
어두운 한숨이
내 가슴에 돌아와
그대가 살아나도
나는 죽을 수 없어
끝내는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176.
이 벌판 쓸쓸해도
꽃은 필 때 피고
질 때 져서
한 해가
또 가고 있소

고달픈 다리를
잠시 쉬고
눈물 어린 세월을
짚어 보다가
깊은 밤의 외로움에
목메이오

어떤 괴로움도
웃음으로 되돌리는
시간에 감사하며
빈 마음 되어
새해를 열려오


177.
많지 않은 날이
오래인 것 같고
오래인 날이
순간인 것 같아
나를
눈물이게 하는 사람

소식 없어
만나지 않아도
순한 목숨으로
언제나
동행인 사람

많은 날
많은 생각으로 괴로워도
고난에
약해지지 않고
다시 아침으로
일어서게 하는
사람


178.
목적없이 만났는데
도달해야 할 곳이 있으면
이 무상 어이하리

어차피
어두운 한 세상
물거품 뭉친데
간 세월도
오는 세월도
잊기로 하오

마음 가운데
그리움 두루 있어도
그대라는
형태마져 버리고
떠나 왔는데

한 걸음 멈추고
돌아서 보니
그대는 그리움이오


179.
그대는 내 안에 있고
나는 그대 안에 있어도
우리는
마주설 힘이 없어
밖으로 헤매어 다닌다

더러
노한 마음 일면
이리 풀고 저리 풀으며
살도 태우고
뼈도 태우며
서로의 적막에 잠긴다

그대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몇천 년도
몇만 년도 아닌데
오늘은 세상일 제쳐놓고
그대 안에 가득한 바다에서
눈부신 파도로
넘실거리고 싶다


180.
그 길이
먼 길인 줄 모르고
그대 찾아나섰던
그날부터
아프면 아픈데로
추우면 추운데로
그리움 동여메고
다소곳이
새날을 기다립니다
발목이 시리도록
눈이 쌓여도
그대 바라고 서서
내가 갖고 싶은 만큼만
내 것인 그대
울지 않고서
어찌 그대 가슴에
질 수 있으랴


181.
많은 날 중의
마지막이 될 날
그리움을 지워버리듯
그대를 반기리다
너무 작아서
끝내
그대 눈에
보이지 않았어도
그대 웃음
내 어둠을 빛내고
그대 마음 끝에
내가 있대도
꿈보다 아름다울
뒷세상 생각하며
이 세상 일은
잊기로 하리다


182.
나의 실종을
그대 가슴에
남겨두고
떠나는 날

내가 가엾어
내가 우는
내 상여행렬의
맨 끝에서

어두운
결백으로
울어버릴
그대여

그리움에 더는
괴롭지 않을
세상으로 가며
그대를 그대에게
되돌려 주려오


183.
그대와 보낸
세월은
짧기만 한데
그대 기다리는
하루는
길기만 하오

한번도
본 적 없는
그런 얼굴로
돌아와
내게
절을 하고 섰는
그대

인사도 없이
떠나려든
내 손을 잡아주오
그대 손을 놓고
편안히 떠나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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