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실 때는 / 박성철
그대 정녕 떠나실때는
내게도 한때
지독히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기억마저 지우고 떠날 일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만나고 사랑하게 된 것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닌 듯
덤덤히 떠날 일입니다.
내게 남겨진 자유 중
그대를 그리워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까지도
냉정히 앗아갈 일입니다.
떠나간 사람과는 달리
잊고자 하나 기어이 잊지 못하는 나를 위해
그대 정녕 떠나실 때는
그대가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도
잊게 하고 떠날 일입니다.
이별방식 / 박성철
그대 왜 모르고 있습니까
그대가 숨기고 싶어했던 슬픔들을
나는 언제나 나의 몫으로 품고 싶었다는 것을
그대가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 때도
내 관심사는 오직 그대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는 일이었다는 것을
그대 더 이상 '사랑했었다'는 말로
고개 떨구지 마십시오
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 고통스러운 것이라 해도
고작 그것에 무릎 꿇는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가야 할 길이 가시덤불이라면
두 손 맞잡고 헤치고 가야지
험하다 해서 지레 포기하는 것이
어디 될 법이나 한 일입니까
그대 기억하십시오
떠나보내는 것은 결코
내 사랑의 방식이 될 수 없음을
떨리는 그대의 음성으로가 아니라
한 치의 의심없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말할 수 있게 되는 날
그날까진 그대의 사소한 그 무엇하나도
결코 떠나보내 줄 수 없음을
왜 사랑하는지 / 박성철
왜냐고 묻지 마십시오
어디가 좋으냐고, 무엇이 좋으냐고
고개를 갸우뚱하지 마십시오
내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내 스스로도 말할 수 없는
그 애매함을 구태여 묻지 마십시오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낮은 곳으로 물이 흘러가듯
내 사랑도 그렇게 흘러갔을 거라고
자고 일어나면
그 길이를 알 수 없을 만큼의 키가 자라나듯
내 사랑도 그저 그렇게 조금씩 자랐을 뿐이라고
그렇게 좋아했을 거라고
그렇게 사랑했을 거라고
살아갈 날보다
그대 사랑할 날이 더 많이 남은 내게
왜 사랑하는지 묻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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