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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사랑굿 / 김초혜 61~ 120

by kimeunjoo 2011. 6. 29.

 

 

 

 

 

사랑굿 / 김초혜

 

61.
낡은피 다 버리고
네게 간 나를
붙들어 둘 수 없어
떠날 수 없는 그대

다음에 만날 때면
그대여
어둠 속 그늘로 오지 말고
빛에서 빛으로 오시게
눈물 속에 되흐르는
그대 말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강물로 흘러 주게

잊을 수 없어
아무래도 못 견뎌
물로 흘러가거든
그대여
한 번만 넘치어 보게.


62.
놓아 버림 후에
가까워지는
그대

그대 모습
뚜렷이 볼 수 없음은
눈물에
믿음이 없어서이고

나의 내부(內部)
끝없는 곳에
끝없이 있는 그대

떠돌던 생명은
한 줄기 눈물로
새롭게 맑아지고

몇 백만의 몇 백만 시간을
돌아서게 두어도
눈물로 다시 오는 그대.


63.
밤이 되오면
꿈에 만나자
마음과 뜻으로
모든 허망 안 보며
물 없는 데서
물을 내라 해도
좋은 얼굴이 되자

내 허물에
네가 더럽혀져도
편안히 받아들이면
어떠한 마음이
그것을 분별하랴

부릴수록 느는 것
욕심만이 아니듯
미워하면 미움 늘어
낯설어지니
서로는 빛이 되어
맹목에 살자.


64.
형상도 빛깔도 없는
헛된 모습에 묻혔던
나를 무엇으로든
가리고 싶으오

그대 공간(空間)을
여행하던 빛을
모조리 꺾어
햇빛 쪽으로 흐르게 하고

이마에 묻은
허물을
씻을 길 없어
꿈을 끊노니

뜻밖의 하늘로
내게 와
상실에서
건져내 주오.


65.
다툼도
허물도 없이

친하지도
소홀하지도 않으며

막지도
비키지도 않고

밝지도
눈부시지도 않게

웃음도
기르지 않고

울어
달이 되지도 않으며

돌같이
아무렇게나
그대 곁에 구르리.


66.
마실 수 있는 이에게서
물을 빼앗고
마시지 못할 이에게
물을 주는 것은
오를 수 없는 하늘을
오르게 하려는 벌(罰)

볕으로도
줄지 않고
바람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바다처럼
무슨 설움으로도
바뀌지 않는 마음

이루어냄에도
허물어짐에도
아서라
마음 쓰지 말고
모두 두고 가는 물처럼
그렇게 흐르리.


67.
불꽃 속에
들어가는
악(惡)이 되어도
먼데 사람 아닌
거기
있고 싶다

좋은 얼굴 헐리고
낯빛은 시들어도
본래의 모습 아닌
어리석음 이대로
물러나 뉘우치고
아플지라도

그대 눈 속에
내 눈을 심고
그대 울음 속에
내 울음 심어
안으로 안으로 상해도
그대
받아들이는
이것이 무엇인가.


68.
내 수치를
아는 것도

나를 피하려
비켜서는 것도

나를 조금도
숨길 수 없는 것도

의지의 문을
부수기도 하고
열기도 하는 것도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을 모르는 것도

한 덩이 무덤인
나입니다

최초로
그늘 속에
햇빛으로
서신 이
그것만 당신입니다.


69.
하루 낮의 기쁨인들 어떠리
꽃 피울 수 없어
씨앗을 기르지 않는
서러운 그대

꽃 꺾어 머리에 이고
나 몰라라
그대에게 가
하루만 보름달이면 어떠리

그대 배경으로
조금은 남은 향기
씻기어지지 말라고
더 어리석어지면 어떠리

작은 흐름을 내어
천리에 이르는
물을 이루어
그대 얽매지 않으려 해도

무릎을 꿇으며
멀어가는 그대를
무슨 용서로
섬길 수 있으리.


70.
등불과 어둠은
같은 빛이라
등불이듯
어둠이듯
그런 마음을 가지고
등불로 잠들고
어둠으로 깨어나도
가슴을 딛고
달아나는 그대를
붙잡지 못하는
아직도 시린
맨손이어라
깊고 무거운
사슬로
묶이어 간
그대가
오늘 아침
이 길로 온다 해도
맞을 수 없는
빈손이어라.


71.
왼쪽 가슴에 물을 내고
오른쪽 가슴에 불을 내어
고요를 갖는 것은
거절로써 나를 구하는
그대를
성내지 않기 위함입니다

불어나는 어둠을 막아
빛살로 지켜 준대도
고단하게 울고 있는
나의 단순함은
그대의
복잡성 때문입니다

그대에게 머무르는 권태가
기쁨에 섞여들지 못하고
떠도는 것은
찾아지지 않을 것을
찾으려는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72.
불 속에
두 손을 넣고
나를 넓혀
그의 모습을
지워 주소서

지운다 그렇대도
나의 외로움
그대
눈빛으로
가라앉혀 주시고

오래 새롭게
만나기 위해
높으게 사는 목숨
이어지고
이어가게 하여 주시어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
더불어
빛나는 노래
부르게 하소서.


73.
봄이 오면
첫 불을 밝히는
꽃을 아는가
그대여

꽃에 묻힌
그대 모습
그릴 길 없어
짐 풀고 싶을 때

기쁨도 슬픔도
내 몫이 아니던
날은 지나
푸른빛 울리고

서로 갈고 닦기에
새로운
봄은
꽃이어라


74.
그대 아니 오는데
눈부신 빛이면
무얼 하리

이제 짐 풀고 앉아
마음으로 지은 죄
붉은 눈물로 받으리

한번만
마주보려고
헛된 열망 여러 번

어둠을 피해 서며
죄 아니게
사랑하는 이

그대 내 뜻과 같았음을
뒷날 깨닫는대도
어찌 원망 없이
그대 맞을 수 있으리


75.
그대 아니 오는데
눈부신 빛이면
무얼하리

이제 짐풀고 앉아
마음으로 지은 죄
붉은 눈물로 받으리

한 번만
마주 보려고
헛된 열망 여러 번

어둠을 피해 서며
죄 아니게
사랑하는 이

그대 내 뜻과 같았음을
뒷날 깨닫는대도
어찌 원망 없이
그대 맞을 수 있으리.


76.
생(生)과 죽음 사이에서
꿈을 꾸었소
흔들리면서
엇갈리면서
꿈과 꿈 사이에서
꿈으로 굳어지고
귀먹고
눈멀어
말을 잃어도
깨어나지 않고
그대에게 이르기
바랐었지만
보다 높은 꿈속에서
그대
되찾기 위해
미움과 고움
버리고
넓게 빛나려 하오


77.
나를 낳게 하라
무엇을 더
허락할 수도 없이
절명한 생명
그대 속에서
죽어간 시간은
빛으로도
깨쳐지지 않고
가슴은
숨길수록 아픈
변명에
에이는데
하늘도 허리 굽힌
나의 진실을
무작정 무겁다고
돌아선 그대.


78.
땅이 눈을 뜨자
하늘을 섬겼듯
아이와 같이
무조건이게 하소서

의식하지 않으면
죽음도 오지 않듯
그대 얻으려 않으면
잃지 않아도 되고

가장 겁난던 것
쏟아버리고
괴로움도 쉬게 하여
확실한 밝음이게 하소서


79.
마음으로 생긴 세상
마음으로 머무르며
마음 따라 기쁨 내니
마음에 의지한
비좁은 몸은
마음을 접으면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어
저절로 허실이 되고
마음과 마음 아닌 것
하나 되지 못하니
이루고
무너짐을
탓하지 말고
마음 안에 있었던 것
모두 부수어
마음 밖으로 밀어내리


80.
달은 깨끗하고
해는 빛나고
그대는
하나를 지켜
고요하라

그대와 나
해와 햇빛이게
달고 달빛이게
끝단 데 없는
기쁨이어라

한 생각도
어지러움도 없이
목숨 더한 얻어
기쁨에 섞이니
그대는
하늘 중의 하늘이어라.


81.
불로도
태워지지 않고
물로도
잠기지 않는
허공보다
높이 있는 그대
빛의 으뜸으로
밝음이 되어
마음의
바탕이 되어주오
그리움도 번뇌도
걸러냈으나
온종일 생각해도
즐겁고
싫지 않은 그대
돌무더기
서러워도
그대 바래 살려오.


82.
떠난다 하면
미련 생기고
잊자 하면
그리움 깊어지니
떠난다
잊는다는
마음 버리고

그대가
파낸 뿌리
묻어
올리는
흙이 된다면
사랑이 풀리어
괴로움 떠나리.


83.
아무 구함도 없는
밝은
섬이 되리

조그만 죄
심장에 가두어 두고
무거운 고통과
움직임 없는
절망이 와도
그대에게
정직하고 싶어라

그대와의
세월은
아픔으로 쌓여 있고

그대 덜
사랑할 수 있다면
빛의 그늘에 누워
봄만 머무는
섬이 되리니.


84.
해도
달도 어둡고
그대도 나도
오늘은 모두
어둠으로 들어
어둠이
어둠 위로 밀리고
배에
스며드는 어둠
퍼내어도
뱃머리를 돌려도
변하지 않는 건
고뇌뿐
어찌해도
어둠이여
용서하도록
용서받도록
도와주소서.


85.
어려울 것도
쉬울 것도 없이
너구러워지는
마음은
외홀로 흐르고

말하기 싫어
말하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서
모르지는 않는 그대

말 안에 없는 말
말 밖에 있는 말
모두 안다 해도
어둠에 빛일 수는 없는 그대

빛을 못 보고
어둠만 본다 해도
새로운 시간을 걸고
지금은
무심(無心)이어야 하는
때.


86.
기쁘지 않게 오고
서럽지 않게 가며
꿈속에 머무는
그대

하늘은 잴 수 있어도
그대 마음
헤아릴 수 없어
잠들어도
우는 나를
어찌하란 말이냐

병을 안고
죽음 오듯
목숨이 무너져도
네게 흐르는
나를
멈출 길 없으니

뜨지 마라
달아
나의 이 설움
끝날 때까지.


87.
고통이 기쁨
가져온다면
금빛 시간
기다리며
그대가 건네준
괴로움
달다 받으리

많이도 데었던
아픔도 잊고
달이 차면
남 몰래
넘어오는 그리움
서로 가졌던 것
버리기 어려워
노상
달만 탓하오.


88.
봄을 보채
무너지는 꿈
일어나지 못하는
잠이고 싶다

새 한 마리
마음 낚아
날개짓도
닿을 수 없는
달 속으로 날은 후

나는 보이지 않고
하늘과 땅
가득하게
너만 있었다.


89.
그리는 사람 있어
얼굴은 빛나
꽃과 같고

어리석고 미련해
얼굴빛 잃어
근심에 얽히네

하늘과 땅이
닫히어
바다가 끓어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으로
불무더기 잊으며

얽힘에서 벗어나
괴로움과
즐거움 함께하리.


90.
백년의 얼굴을
벌(罰)로 받아
눈물이
되었음에

꿈만 가졌던
가난한 마음에
달은
눈물만 되고
그대
휘파람소리하늘 열어
천지에 꽃이더니

이제는
거꾸로
시간을 끊어
나를 묶었네.


91.
불에 달군
돌을
쥐어 주고
데지 말라는
그대

뜻대로 생기
마음이기에
잊으려
외로이 타도

그대 마음
비출 길 없어
헛된 생각 안고
꿈길로 드니

비워 두면
맑은 모습으로
그때 가리라.


92.
그대 원하는
형상대로 될 수 없고
내 형상대로
그대 만들 수 없네

넓어지던 원이
중심을 놓고
없어진 후
악몽에서 시달리고
깨어나
그대 무정한
눈빛과 만나네

마음속
부끄러움
벗어나지 못해
그대
떠날 수 없는
계속되는 이별이네.

 
93.
화염(火焰)의
옷을
벗을 수도
벗길 수도 없어
태워지면서
형극(荊棘)의
길로 든다
살들이
타고 남은 재
영혼을
맑게 하고
그대만이
벗길 수 있는
이 옷은
타지도
낡지도 않고
나를 태운다.


94.
그대는

달빛으로 번지는
하늘이어라
기왓장에 어리는
시월의 빛이어라

꿈도 휘저어보고
빛도 휘저어보는
하늘을 떠도는 새
그대를 운다

몸은 하늘에 두고
그림자는 땅에 두어
그 망연함
만난다 해도
변하면 변하는 것이 아닌
서로 지켜
길어올리는
내일이 되자


95.
봄이 올 때는
봄의 마음으로
되돌아가게 하고
겨울이 오면
겨울로
데려다 놓는
그대

땅을 벗어나
살 수 없듯
그대 눈에
하늘을
두르고 있는 한

해가 지지 않아도
해가 뜨지 않아도
그대는
나의
고요한 중심


96.
한때는
봄으로 머문
그대였는데
오늘은
가을빛으로
내게 와
쓸쓸함만 더해주는
그대

고통은 아무때나
나를 깨워
그대 하늘 끝
울며 건너는
새가 되라 하는데

그대는 바르고
나는 어리석어
기울어진 하늘
이 세상 끝낼
그때에
단 한번
그대 이름 부르리


97.
목숨은 빨리 흘러
잡기 어려운데
분별 있는
나이에 이르러도
사소한 일에
끼어
문득 작아집니다
가로막힌 것
건너야 할 것 없이도
그대 가까이
말라는 것
하늘 뜻이라 여기고
그대 뜻 속에
헛됨 없이
이 날을 삽니다


98.
그대는
눈에 머무는
푸른 하늘 꿈으로도 오고
꽃 위에
빛을 더해
환희로도 온다

목숨이 바뀔 듯
무섭던 미움도
어느새
가라앉아
맑게 흐르고

아무에게도
보일 수 없는
무른 목숨
웃음으로 바꾸고
돌아앉아
울음이 되고.


99.
그대와 내게
흐르지 않는
시간 있어
서로
나뉘어
어둠을 돈다 해도
다시
만나게 되리
지난날
잘못을
고쳐 살 수 없어도
끊임없이
나를 지우며
그대
뜻하는 길로 가노니
낮과 밤을
엇갈리게 해
평소의 바램
이루어지게 하소서.


100.
더러는
지나치고
못 미치기는 하나
천성이
그런 것은
아니었음에
심지 속에
그대 지니고
새로이
머물고 싶어라

깊고도 머언
소중한 이여
그대에게서 비롯하여
그대에서 마치는
아픔일진대
그대
물로 흘러
돌아오지 않아도
구석구석 어디나
그대 곁이네


101.
그대 내린
벌(罰)이
화를 불러도
고통은
나를 깨우는 길

미움은
한 덩이씩
아침 쪽으로 뒹굴어
은은한
그리움이 되고

어둠을 넘어
그대여
내게 오라
새로운 해를
밀어올리자


102.
살기 싫은 날에는
기억하고
되새길 것 없이
자다가 깨어나
더 깊은
잠 속으로 든다
해에 향할 건가
해가 올 것인가
궁리하지 말고
영혼 안에
외로운 불
가까이 당겨
우리 함께 빌자
그림자 몸을 떠나도
그리워 살자고


103.
어두운 밤에도
푸른 하늘인
그대

얼핏
눈물일 것 같으면
고개돌려
그 마음
딴데로 옮기고

마음은
그림자로만
채우라고
작아야
커다란 것을
가질 수 있다며
바람 속에
먼 밤을 울게 하는
그대.


104.
천 번 부르면
죽은 넋도
돌아온다 하는데

메아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굳어
첩첩 겹겹
산을 만들고

그대 까닭에
마음 깊숙이
자리잡은
허공은

깨어나기 어려운
가여운
잠이었네


105.
내게 있는
조그만 눈
남의
어리석음은 깨우며
이 마음은
지키지 못하는
덧없음이네

인과(因果)의
그물에 얽혀
그대 벗어날 곳 찾아
절름거려도
감긴 마음
풀리지 않고

진실을 꾸며도
거짓을 꾸며도
백년 살 것 아닌데
한 사람
따뜻이 하기
어찌 그리 힘드오


106.
바다의 흐름이
변치 않듯
그 마음
내게 머무는 줄
모르는 듯 안다네

새가
바람에 의지해
날기도 하고
머무르기도 하지만
땅 위를
벗어난 일이 없듯
나도 그대의


오늘은
세상에서 묻은 먼지
모두 두고
햇빛보다
더 밝은
웃음으로 오시게


107.
그대
멀어가도
그리움은
다감도 하여라

일부러
지은 마음 아니고
억지로
잊어지는 것 아니니
허물없는 웃음
나누자더니

그대와 나
나뉘어
땅에 묻혀도
그대는
시(詩)와 함께
다시 살리라


108.
나를
고집하여
생긴
병입니다
그림자만 걷는
이 길은
멀어
끝없는 길입니다
뜻하는 길로
가지지도 않고
가로질러
갈 수 없는
얼굴이
자신에게
안 보이는
길입니다


109.
놓아버림 후에
가까워지는
그대

그대 모습
뚜렷이 볼 수 없음은
눈물에
믿음이 없어서이고

나의 내부(內部)
끝없는 곳에
끝없이 있는 그대

떠돌던 생명은
한줄기 눈물로
새롭게 맑아지고

몇백만의 몇백만 시간을
돌아서게 두어도
눈물로
다시 오는 그대


110.
밤이 되오면
꿈에 만나자
마음과 뜻으로
모든 허망 안 보며
물 없는 데서
물을 내라 해도
좋은 얼굴이 되자

내 허물에
내가 더럽혀져도
편안히 받아들이면
어떠한 마음이
그것을 분별하랴

부릴수록 느는 것
욕심만이 아니듯
미워하면 미움 늘어
낯설어지니
서로는 빛이 되어
맹목에 살자


111.
다툼도
허물도 없이

친하지도
소홀하지도 않으며

막지도
비키지도 않고

밝지도
눈부시지도 않게

웃음도
기르지 않고

울어
달이 되지도 않으며

돌같이
아무렇게나
그대 곁에 구르리


112.
마실 수 있는 이에게서
물을 빼앗고
마시지 못할 이에게
물을 주는 것은
오를 수 없는 하늘을
오르게 하려는 벌(罰)

볕으로도
줄지 않고
바람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바다처럼
무슨 설움으로도
바뀌지 않는 마음

이루어냄에도
허물어짐에도
아서라
마음 쓰지 말고
모두 두고 가는 물처럼
그렇게 흐르리


113.
불꽃 속에
들어가는
악(惡)이 되어도
먼 데 사람 아닌
거기
있고 싶다

좋은 얼굴 헐리고
낯빛은 시들어도
본래의 모습 아닌
어리석음 이대로
물러나 뉘우치고
아플지라도

그대 눈 속에
내 눈을 심고
그대 울음 속에
내 울음 심어
안으로 안으로 상해도
그대
받아들이는
이것은 무엇인가


114.
내 수치를
아는 것도

나를 피하려
비켜서는 것도

나를 조금도
숨길 수 없는 것도

의지의 문을
부수기도 하고
열기도 하는 것도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을 모르는 것도

한 덩이 무덤인
나입니다

최초로
그늘 속에
햇빛으로
서신 이
그것만 당신입니다


115.
하루 낮의 기쁨인들 어떠리
꽃 피울 수 없어
씨앗을 기르지 않는
서러운 그대

꽃 꺾어 머리에 이고
나 몰라라
그대에게 가
하루만 보름달이면 어떠리

그대 배경으로
조금은 남은 향기
씻기어지지 말라고
더 어리석어지면 어떠리

작은 흐름을 내어
천리에 이르는
물을 이루어
그대 얽매지 않으려 해도

무릎을 꿇으며
멀어가는 그대를
무슨 용서로
섬길 수 있으리


116.
등불과 어둠은
같은 빛이라
등불이듯
어둠이듯
그런 마음을 가지고
등불로 잠들고
어둠으로 깨어나도

가슴을 딛고
달아나는 그대를
붙잡지 못하는
아직도 시린
맨손이어라

깊고 무거운
사슬로
묶이어 간
그대가
오늘 아침
이 길로 온다 해도
맞을 수 없는
빈손이어라


117.
가을빛 속에
가득한
그대 목소리
설움으로
엉기어
멀어져가네

괴로움도
기쁨도
그리움만 자라게 해
아픈 마음
세상에
들키고 말았어라

모든 걸
또 감추고
눈 감고 서도
그대를
벗지 못해
아득하여라


118.
형상도 빛깔도 없는
헛된 모습에 묻혔던
나를 무엇으로든
가리고 싶으오
그대 공간(空間)을
여행하던 빛을
모조리 꺾어
햇빛 쪽으로 흐르게 하고
이마에 묻은
허물을
씻을 길 없어
꿈을 끊노니
뜻밖의 하늘로
내게 와
상실에서
건져내주오


119.
그대의
보이는 마음 아닌
보이지 않는 마음과
동행하며
빛 속에
홀로보다
어둠 속에 같이 하리

기쁨에 넘치는
의무로
어둠을 삭이며
새로운
하늘을 여는
그대는
나의
먼 위안.


120.
사랑 얻기 전의
마음으로 돌아간
사랑이리

갈수록
어긋나
무너지는 길
그대 보내고
나는 남아서
사랑을 슬픔으로
견디어내리

그리움도 어두워지면
마음도 쉼을 얻어
오늘도 내일도
아무것 아니게
그대를 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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