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한개 / 문정희
- 늙은 여자-
여자들은 서른 살 때부터
자신의 나이를 감추기 시작한다
사실은 스물아홉 살 때부터
서서히 부끄러워한다
돌 틈새에 끼인
엉겅키처럼 미안하게 서른을 산다
마흔이 되는 날, 촛불 한 개를 켜놓고
여성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인간이 되는
첫번째 생일을 맞으리라는
친구여
촛불을 불기 전에 생각해 보아라
그대 그날이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심지어 여자조차 아닌
아무짝에 쓸모없는
아줌마가 되는 것뿐이로다.
여자 나이 마흔 그리고 쉰
저 푸르고 넉넉한 목초지를
벌써 페허로 내던져놓고
가죽장화 신은 도적떼들이 지나가고 있다
갈대숲을 지나며 / 문정희
처녀 시절이여, 안녕
나에겐 증거처럼
웨딩드레스를 입고
수염 자리 의젓한 신랑의 팔을 끼고 서 있는
한 장의 결혼 사진도 있지만
이상도 하지
나는 한 번도 결혼한 여자가 아니었네
유부녀는 더구나 아니었네
방목해서 키운 튼튼한 아이들
넉넉한 평수에 편리한 부엌의 안주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처녀였다네
집안에서 잠시 아내이다가
현관문을 나서면
어김없이 다시 처녀가 되었지
사람들은 모르지
세상엔 결혼한 여자가 없다는 것을
모든 여자가 독신이라는 것을
세상이 가진 자로는
재어지지 않는 넓이와 크기 때문에
할수없이
웨딩드레스 입고 사진 찍은 여자를
결혼한 여자라 묶어버릴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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