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나 사이 - 유안진
왜들 이러지 이제 갓 피고 있는데 다 늙은 할미꽃이라니
서리 맞아 볼품없이 시들었는데도 애기똥풀이라니
까치발로 키만큼 일어섰는데도 앉은뱅이꽃이라니
작고 여리고 앙징스럽기만 한데 무지막지 오랑캐꽃이라니
부르기도 듣기도 서로 민망스럽게
며느리밑씻게 개부랄꽃 말똥비름 쇠똥굴레 쥐오줌풀
여우오줌 쥐똥나무……등등
세상과 나 사이, 너무 멀다, 주파수가 너무 달라.

유안진(67·사진) 시인이 열세 번째 신작 시집 ‘거짓말로 참말하기’(천년의시작)를 펴냈다.
2006년 서울대 교수직을 접고 시에 전념한 후 처음 내는 시집으로, 언어적 밀도가 한층 탄탄해지고 사유도 훨씬 깊어졌다. 유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진실과 거짓이 공존하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세상과 나 사이, 너무 멀어, 주파수가 너무 달라/ 세상은 진실이 거짓말하는 곳이니까/ 나는 거짓이 진실을 말하는 세상을 만들었지”(‘거짓 세상, 홈피’)
시인은 우리의 삶을 진실과 허구가 공존하는 세계로 파악한다.
이 세계는 “알면 병 되고/ 모르면 약이 되는 진실된 거짓들”(‘진실, 반어적 진실’)로 가득 차 있거나
“꿈도 현실 같고 현실도 꿈 같아서/ 현실은 늘 오늘 여기에 없었다”(‘초현실이 더욱 현실이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 참과 거짓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그것들을 뛰어넘는 복합적 의미들로 견고하게 짜여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궁극의 말을 알아듣는 밝은 귀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표제작에서는 진심이 실린 거짓말이 어떤 참말보다도 한 시대를 명확히 드러낸다는 걸 보여준다.
“지금은 없어진 공산주의 시대였다/
루마니아의 초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의 공부였단다/
여러분의 아버지는 누구죠?/
니콜라이 차우세스쿠요/
여러분의 어머니는 누구죠?/
엘레나 차우세스쿠요/
잘 대답했어요. 여러분은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어요?/
고아요/
(한 신문에 실린 이 풍자로 관련자들 모두 체포되었다고 한다)”
특히 작품 곳곳에서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는 재치가 번뜩인다.
“발이 있어야 말은 말발이 서고/
글도 힘센 글발이 되고/
…/
눈에는 핏발이 서야만/
시선도 눈길로 열려서 발길을 재촉해/
발만 달아주면 마당도 마당발이 되어/
끗발 날릴 수 있다니까/
신을/
왜 신발이라고 하는지 이제 알겠네.”
(‘신이 신발인 까닭’)
문학평론가 홍용희씨는 추천사에서 “유안진의 시 세계는 쉽고 재미있고 신선하고 풍요롭다”며
“기우뚱한 시선을 통해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다수의 횡포였던가를 들춰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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