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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바다에 대한 시 12선

by kimeunjoo 2009. 12. 12.

 

 

 

 

 

 

바다여 당신은

 

 

                                   - 이해인 -

 


내가 목놓아 울고 싶은 건
가슴을 뒤흔들고 가버린
거센 파도 때문이 아니다
한 밤을 보채고도 끊이지 않는
목쉰 바람소리 탓도 아니다

스스로의 어둠을 울다
빛을 잃어버린
사랑의 어둠

죄스럽게 비좁은 나의 가슴을
커다란 웃음으로 용서하는 바다여
저 안개 덮인 산에서 어둠을 걷고
오늘도 나에게 노래를 다오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는 서투른 異邦人(이방인)

언젠가는 모두가 쓸쓸히 부저져 갈
한 잎 외로운 혼임을
바다여 당신은 알고 있는가

영원한 메아리처럼 맑은 餘韻(여운)
어느 波岸(파안) 끝에선가
종이 울고 있다

어제와 오늘 사이를 가로 누워
한번도 말이 없는 묵묵한 바다여
잊어서는 아니될
하나의 노래를 내게 다오

당신의 넓은 길로 걸어가면
나는 이미 슬픔을 잊은
행복한 작은 배

이글거리는 태양을
화산 같은 파도를
기다리는 내 가슴에
불지르는 바다여

폭풍을 뚫고 가게 해 다오
돛풍이 찢기워도 떠나게 해 다오

 

 

 

 

 

 

바닷가에 대하여

 

 

                                        - 정호승 -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에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 제 좋다

 

 

 

 

 

 

바다의 노래
- 나의 넋, 물결과 어우러져 동해의 마음을 가져온 노래 -

 


                                                            - 이 상 화 -

 

 

내게로 오너라 사람아 내게로 오너라
병든 어린애의 헛소리와 같은
묵은 철리(哲理)와 낡은 성교(聖敎)는 다 잊어버리고
애통을 안은 채 내게로만 오너라.

하나님을 비웃을 자유가 여기 있고
늙어지지 않는 청춘도 여기 있다
눈물 젖은 세상을 버리고 웃는 내게로 와서
아 생명이 변동에만 있음을 깨쳐보아라.

 

 

 

 

 

 

먼 바다

 

 
                                  - 박 용 래 -

 


마을로 기우는
언덕, 머흐는
구름에


낮게 낮게
지붕 밑 드리우는
종소리에

돛을 올려라

어디에, 막 피는
접시꽃
새하얀 매디마다

감빛 돛을 올려라

오늘의 아픔
아픔의
먼 바다에.

 

 

 

 

 

 

바  다

 


                              - 나 희 덕 -

 

 

바다를 저리도 뒤끓게 하는 것이 무어냐
파도를 깨뜨리는 뼈 부딪는 소리
채 마르지 않아 뚝뚝 흘리며
저 웃고 있는 푸른 살이 대체 무어냐
욕망의 물풀이 자라나는 기슭,
떠나온 이보다 쫓겨온 이가 많은 뱃전,
비틀거리며 발 디뎌온 생활,
그로부터 파도처럼 밀려온 사람들이여
그대들의 뼈가 부딪칠 때마다
물결, 불꽃의 물결 늘 움직여
왜 자꾸만 나를 살고 싶게 하는지
왜 이리도 목마르게 하는지
아는가, 뒤끓는 바닷속에 몸을 던진 사람들이여

 

 

 

 

 

 

바  다

 


                              - 정 인 섭 -

 

 

희망 바다
한없이 출렁거리는
내 살과 피
무엇으로 파서 거기
무엇을 묻을까


사람아
절망 바다

알 길 없어라
캄캄한 님의 앞에
서는 나를
입다문 산처럼
무거운 귀 강처럼


님의 마음은
거칠고 멀어

푸른 바다 저 멀리
나를 밀어내어서

섬도 없이 섬이 되어
캄캄한 밤이 오면
내 저 안의 하늘가에 뜨리

 

 

 

 

 

 

그 저녁바다

 


                                 - 이 정 하 -

 

 

아는지요?
석양이 훌쩍 뒷모습을 보이고
그대가 슬며시 손을 잡혀 왔을 때,
조그만 범선이라도 타고 끝없이 가고 싶었던
내 마음을.
당신이 있었기에 평범한 모든 것도
빛나 보였던 그 저녁바다,
저물기 때문에 안타까운 것이
석양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지요?
발길을 돌려야 하는 우리 사랑이
우리가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와야 하는 그것이
내 가장 참담한 절망이었다는 것을.
저무는 해는 다시 떠오르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다시 그곳을 찾게 될 날이 있을까.
서로의 아픔을 딛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대로 영원히 영원히
당신의 가슴에 저무는 한 점 섬이고 싶었던
내 마음, 그 저녁바다를.

 

 

 

 

 

 

바  다

 


                                - 서 정 주 -

 

 

귀 기울여도 있는 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수한 물결 우에
무수한 밤이 왕래하나,
길은 항시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 데도 없다.

아-반딧불만한 등불 하나도 없이
울음에 젖은 얼굴을 온전한 어둠 속에 숨기어 가지고...너는,
무언의 해심(海心)에 홀로 타오르는
한낱 꽃 같은 심장으로 침몰 하라.

아-스스로이 푸르른 정열에 넘쳐
둥그런 하늘을 이고 웅얼거리는 바다,
바다의 깊이 위에
네 구멍 뚫린 피리를 불고.....청년아.

애비의 잊어버려,
에미를 잊어버려,
형제와, 친척과, 동무를 잊어 버려,
마지막 네 계집을 잊어 버려,

알라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아니 아메리카로 가라, 아니 아프리카로
가라, 아니 침몰하라. 침몰하라. 침몰하라!

오-어지러운 심장의 무게 위에 풀잎처럼 흩날리는
머리칼을 달고
이리도 괴로운 나는 어찌 끝끝내 바다에 드득해야 하는가.
눈뜨라. 사랑하는 눈을 뜨라. ....청년아.
산 바다의 어느 동서남북으로도
밤과 피에 젖은 국토가 있다.

알라스카로 가라!
아라비아로 가라!
아메리카로 가라!
아프리카로 가라!

 

 

 

 

 

 

바  다

 


                                  - 이 원 섭 -

 

 

나로 하여 너와 함께 있게 하라
끝 없이 짙은 네 외로움 속에
지나가는 기러기가 흘리고 간
핏방울처럼 꺼지게 하라.

임께서 나를 찾아 오시는 날은
네 치마자락 안에 얼굴을 묻고
슬픈 노래 부르듯 타신 뱃전에
고요히 고요히 바서지리라.

 

 

 

 

 

 

바다 풍경


 
                               - 용 혜 원 -

 


파도 소리가 듣고 싶어
바다를 찾았다

눈 앞에 펼쳐지는
해변가 모래밭엔
수없이 오고간 사람들이
발자국이 있었지만
우리들의 발자국은 없다

홀로는 바닷가를
걸을 수가 없다
파도 소리가
그대의 웃음 소리만 같아
내 마음에 외로움만
가득 차 올라
울어 버릴 것만 같다

해변이 다 보이는
바다 풍경에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그대 생각에 빠져든다

사람들, 사람들이 보인다
갈매기, 갈매기들이 춤춘다

연인들, 친구들, 가족들
그외 수많은 사람들
그러나, 모두다 타인이다

갈매기 한 마리가
푸른하늘을 치솟아 나른다

내 마음을 그대에게
전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녘바다

 


                                  - 서 정 윤 -

 

 

언제나 나의 서쪽 하늘은 붉었다
안개조차 붉은 이름을 부르며
하루가 바다로 잠기어 갈 때
나의 하늘은 아름다웠다.

어디에든 바람의 흔적이 칠해져
건강한 바다가 팔뚝에 감기고
눈들을 감고 떨어지는 또 하나의
도화지에
눈부신 바다가 날린다, 날리다가
지친 그물의 책갈피에서
뽑아내는 물보라의 빛깔,
바람으로 건너와
나의 품에 그려지는 인어 이야기
안개로, 구름으로 떠올라가고
인어 비늘에 빛나는 서녘하늘

불타는 바다의 은빛 미소가
나의 한 쪽을 차지하던
어느 도화지,
잊을 수 있는 건 모두 버리고
바다새가 날아 돌고 있다.

 

 

 

 

 

 

허허바다

 


                                   - 정 호 승 -

 

 

허허바다에 가면
밀물이 썰물이 되어 떠난 자리에
내가 쓰레기가 되어 버려져 있다
어린 게 한 마리
썩어 문드러진 나를 툭툭 건드리다가
썰물을 끌고 재빨리 모랫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나는 팬티를 벗어 수평선에 걸어놓고
축 늘어진 내 남근을 바라본다
내가 사랑에 실패한 까닭은 무엇인가
내가 나그네가 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어린 게 한 마리
다시 썰물을 끌고 구멍 밖으로 나와
내 남근을 툭툭 친다
그래 알았다 어린 참게여
나도 이제 옆으로 기어가마 기어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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