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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바다에 대한 시 모음

by kimeunjoo 2010. 10. 30.

 

 

 

바다 / 백석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늘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바다 / 김소월 



뛰노는 흰 물결이 일고 또 잦는
붉은 풀이 자라는 바다는 어디

고기 잡이꾼들이 배 위에 앉아
사랑 노래 부르는 바다는 어디

파랗게 좋이 물든 남빛 하늘에
저녁놀 스러지는 바다는 어디

곳 없이 떠다니는 늙은 물새가
떼를 지어 좇니는 바다는 어디

건너서서 저편은 딴 나라이라
가고 싶은 그리운 바다는 어디

  

 

바다를 잃어버리고 / 이성선


바다를 바라보다가
바다를 잃어버렸습니다.
바닷가를 거닐며
바다를 찾고 있습니다.
당신에 너무 가까이 있다는 것은
당신을 잃는 것입니다.
당신을 다 안다는 것은
당신에 대하여 눈을 감는 일입니다.
사랑도 그러합니다.
이 가을에 이젠 떠나야겠습니다.
멀리서 더 깊이 당신에 젖고 싶습니다.
당신의 눈동자와 흔들리는 가슴
물새들의 반짝임도 울음소리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고 들어야겠습니다.
당신이 보내신 편지를 읽듯이
멀리서 떨리는 손으로
등불 아래서 펴 보아야겠습니다.

 

 

할머니의 바다 / 김준태 

 

아가야, 오늘은
솔바람 구비구비 동백꽃 남쪽
그 해남이란 곳에 걸어가서
대추씨앗처럼 따글따글 익은 슬픔도 만나보고
천년을 살아온 놋쇠바람 손자가 되어
할머니의 푸른 친정 앞바다를 허우적거리면
병든 내 노래도 핏기가 돌까 혹은 돌까!

공자 맹자 사서四書를 읽었다는 사람들이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무지랭이들 앞서서
갈팡질팡 서로의 목숨을 팔아먹던 시절
피, 피, 피가 핑핑핑 들끓던 그 망나니시절에도
뽕나무밭 뱀재기벌레 한 마리도 밟지 않고
진도나 아리랑고개를 후여후여 넘어오신 할머니
그래도 자신의 죄罪만을 드러내며 대흥사大興寺에 빌고!

부처님께 빌고 한울님께 빌고
논 한가운데 옹달샘에 가서 옹달샘신神한테 빌고
당산나무에 가서 당산나무神한테 빌고
달을 보며 달을 쫓아가며 둥그러이 빌고
하루에도 수십번 춘하추동 수수백년 빌고지고
쌀 한톨 콩알 하나 하늘로 알고 살아오신 할머니
할머니의 무명베 치마에 묻혀서 펄럭인다면
병든 우리 노래도 핏기가 돌까 혹은 돌까!

살아생전 밭을 매다가도
축! 처진 늙은 젖이라도 내밀어
어린 손자들의 울음을 울음을 막아주던 할머니!
아가야, 오늘은 그러면 그러했던 할머니의 친정 앞바다에 풍덩 뛰어든다면
거울이 빠져나간 내 몸뚱이는 밝아질까 혹은 밝아질까
솔바람 구비구비 동백꽃 남쪽
그 해남이라는 곳에 일자무식一字無識으로 걸어가서
대추씨앗처럼 따글따글 익은 슬픔도 만나보고
천년을 넝쿨지어 나부껴 온 놋쇠바람의 손자가 된다면!

시집 - 흰각시붓꽃 
  

 


고래를 기다리며 /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바다와 여인 / 이생진

 

-구엄에서의 사랑이야기 26 

여자하고 있어서 행복하다는 것은 정말 잠깐이다
여자하고 떨어져 있어야 그립고 행복한 것인데
자꾸 여자 가까이 있으려 한다
정말 잠깐이다
차 한 잔 마실 만한 시간이다
맥주거품이 다 걷혔을 때
여자에 대한 거품도 걷혀진다
여자들도 남자를 그만한 것으로 여길 거다
여자와 남자는 같은 생각을 하니까
그보다는 바다하고 있는 시간이 길다
여자하고 지내는 시간이 이렇게 길었다면
머리털은 물론이요 수염도 다 빠졌을 것이다
어떻게 변명해야 이쪽 저쪽 다 좋은 소리가 되나
여자와 노는 시간을 어떻게 변명해야 여자가 알아듣나
그것을 나는 바다에게 묻고 있다 

 

 

소금은 바다로 가고 싶다 / 윤종대  


바람과 햇살에 닦여서
새하얀 소금
고기 떼를 안고 출렁이던
바람에 몸을 흔들던
한줌의 소금을 보았다.

한 바다에서 기슭으로 밀려나
땅 위에 갇히어
번쩍이는 혼만 갈무리하여 떠난
소금.
다시 그뼈를 드러내어
풀잎이 되고 나비가 된다.
천천히 골짜기를 나선다.

한줌의 뼈가 세상의 어부로
다시 태어난다.

시집 - 소금은 바다로 가고싶다 1995 

 

 

바다의 변화 / 김성식 

해면에 고기비늘과 같은
작은 물결이 있으나
거품은 생기지 않음.
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 속의 윤선도가
낚시질하던 곳을
제1의 바다라 부른다

해면엔 작은 물결이 커지고
파도 머리가 부서져 거품이 생기며
백파가 나타남.
신라 헌강왕이 개운포 갯가에서
처용을 만났을 때를
제3의 바다라 부른다

파도는 중간 정도이며 뚜렷해지고
물결이 길어지며 백파가 많음.
효녀 심청이가 인당수 거친 물에
뛰어 들기 직전을
제5의 바다라 부른다

파도가 점점 커지고 물머리가 부서져
거품이 바람 부는 데로 흘러감.
풍파에 놀란 사공이
배를 팔아 말을 사겠다고
울먹이던 곳을
제7의 바다라 부른다

엄청나게 큰 파도
물거품이 풍하風下로 흐르며
물보라 날리고 부서져 시정이 악화됨.
지구의 축이 꺾어져
한 쪽으로 급히 쏠리는 듯
미쳐가는 바다는
일만척 깊숙히 가라앉힌 가슴앓이를
뒤집어
버선목 뒤집듯 뒤집어
스스로 썩은 곳을 도려내
내게 던질 때
제9의 바다, 또는
성식이의 바다라 부르지만
바다는 언제나 되돌아서서
영零의 바다로 거듭 태어나
새로운 살갗 키우는 걸
되풀이 하고 있었다

해면은 거울과 같음. 

 

 

바다 / 홍신선 


그뭄밤의 빈 바다에는
돌아가는 파도와 파도들의
만리 같은 등과 어깨투성이다
더러 일어서는 물너울 속에서
야성의 흰 이빨을
으르렁거리며
환각의 개떼는 갇혀 울고
그 장대한 물마루 너머 아래선
긴 불을 켜들어 찾는 그림자
내 이름을 찾으나
즐비한 말들 사이
호젓이 돌아가는 파도와 파도들의
만리 같은 등과 어깨투성이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닷가에 서서 / 강해산
 


바람은 통속에서 울리는 북소릴 내며
세상 모든 것들을 날려버릴 기세로 몰아치고
그 바람에 나부끼는 빗방울은
시퍼런 면도날 보다 더 예리하게
허공에서 이리저리 미친 춤을 춘다.
파도는 큰 아가릴 벌려 집어삼킬 듯
눈부신 백색 거품을 뿜어내며 해변을 할퀸다.

그녀를 바다에서 만났듯이
이제 태풍 속에 내 모든 걸 내던지듯
그녀 사랑의 슬픈 이별을 고한다.
기나 긴 세월 속에 남은 것이라곤
검게 타버린 푸석대는 숱처럼 지친 마음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아름다운 사랑이란
태양을 따라 도는 해바라기처럼
태풍에 휘몰아쳐 죽어 가는 파도처럼
단 하나만을 생각하는 마음이건만
간사한 마음에 눈이 흐려진 도망자는
더 비겁해지기 싫은 사랑의 방관자인가?

바람아 거세게 불어라!
비수같은 비야 세차게 찔러다오!
파도여 네 검은 입 속에 날 삼켜다오!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닷가에 서서
미친 듯 광란하는 바다 속으로
그녀에게 오래 미쳐 있던 나를 바치려한다.
감히 겁도 없이 이별 속으로
태풍에 비틀거리며 바다 속으로 간다.
휘몰아치며 쓸려가며...... 

 

잠자는 바다 / 남진우 


잠자는 바다
나무 그늘 아래
잠든 여인이 누워 있다 그녀 숨소리 따라
조금씩 잎사귀들이 흔들린다 살며시 내려앉는
안개와 새 울음소리

머얼리 바닷물은 부풀어 올라
둥근 달을 낳고 달은 소나무 향기를
대기 가득히 풀어 놓는다 푸르른
바람 한 줄기 그녀 입술을 스칠 때

누군가 촛불을 켜들고
우물 밑으로 내려간다 한없이 깊고
어두운 우물 밑 잎사귀들은 쌓이고
달빛은 오솔길을 거슬러 오르는 피를 따라
어두운 숲으로 흘러간다

흘러간다 서서히 밤하늘을 적시며

......이 밤 그들은 뗏목을 타고 사나운 밤바다를 건너가리라
......조금씩 가라앉는 수평선너머 폭풍우는 그들을 기다리고
......이 밤 그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섬을 찾아 헤매리라
점점 자욱해지는 안개 저편
그녀는 미소짓는다 그물을 들고 바다를 내려가는
사나이들의 낮은 휘파람이
들리다 그치는데

아득히 열리는 바다 달빛에 씻긴 물결이
그녀 잠 속으로 밀려들어 물보라를 일으킨다
자욱히 어둠의 가루를 흩날리며 파도가
해변에 토해놓은 부서진 나무 조각들

말미잘 불가사리 물거품의 상형문자들

다시 바람이 일어 잎사귀 흔들리고
그녀 숨소리가 차츰 멀어진다. 서서히 구름의
천막에 갖혀진 밝아오는 하늘 저 멀리엔 차갑게
빛나는 등대 하나뿐 
 

대포항 방파제 / 함성호 


바다는 보이지 않고 별만 보인다
나는 또 혼자 중얼거릴 것이다
망했는데도 왜, 끝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파도는 병신, 너는 병신, 하며
대포항 방파제를 돌아서 나가고 있다
어차피 내 청춘의 실패는 이십세기와 같이 가 버렸다
나는 안다
기껏해야 몇 개의 별빛을 쥐고
돌아온 길을 다시 가야 하는 이
되풀이되는 생의 곡조를
어디 한 걸음이라도헛딛을 수조차 없으리라
(알렉산더가 인도에서 세계의 끝을 보았을 때
그는 죽었다)
밤의 방파제 깊은 구멍 속에서 들려 오는
끄으는 쇠사슬 소리
나는 언제나 헛된 희망만을 가지고
이 별빛 많은 바다를 돌았섰단 말인가?
등대,
저 등대까지만 더 나가자
별이여, 파도여
언제나 그랬듯이
돌아가는 길은 또 처음 걷는 길처럼
쇠미역에 밥을 싸 먹고
헤헤, 거리며

시집 - 제46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2001

 


겨울 바다 / 강세환 

 

아침 동틀 무렵
어머니는 아버지 잠바를 걸치고
잠든 우리들 머리맡을 지나
돈 벌러 어판장에 나갔다
겨울 내내 어머니는 바다를 상대로
허기진 살림을 꾸려 나갔다

저녁 해질 무렵
아버지는 술집에 가서 소주를 마시고
나와 동생에게 막국수를 삶아 주었다
겨울 내내 아버지는 바다를 등진 채
낡은 그물만 손질하였다

그러나 그러나 겨울 새벽 포구에는
뱃사람들이 속 쓰리는 배를 움켜쥐고
거칠게 노를 저으며 바다를 향해 떠나갔다
그해 겨울 바다에는
밤마다 눈이 하염없이 내렸고
고깃배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너무나 배가 고팠다

시집 - 월동추 1990 
 

 

그 바다가 그리운 것은 / 유인숙 


쏟아지는 햇살 눈이 부셔라
바람에 밀려 흔들리던
잔물결 사이로
진한 그리움은 살아 오른다
켜켜이 채석강에 쌓인 흔적들
썰물에 밀려 빠져나가고
눈에 드러나 보이는 단층 위엔
오랜 추억만이 서려있구나
겨울 해풍海風이면 어떠랴
봄날 같은 마음들이 모여든 자리에
외로운 갈매기도
가던 길을 돌아 날개를 펴고
바다여, 그리운 바다여
가는 목청 돋우어 끼룩거리는데
나는 또 한날을 그리움 속에
풍덩 빠뜨려야 하는구나
그 바다가 그리운 것은
사랑이 물거품을 뿜어내며
하얀 파도로 밀려들기 때문이다
눈부신 햇살이 알알이 부서져
내 안에 아쉬움으로
눈물겹게 쏟아지기 때문이다 
 

 

바다가 / 허수경 


깊은 바다가 걸어왔네
나는 바다를 맞아 가득 잡으려 하네
손이 없네 손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손이 없어서 잡지 못하고 울려고 하네
눈이 없네
눈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바다가 안기지 못하고 서성인다 돌아선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고 싶다
혀가 없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 그 집에 다 두고 왔다

글썽이고 싶네 검게 반짝이고 싶었네
그러나 아는 사람 집에 다, 다,
두고 왔네

시집 -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창 밖에 동해가 있다 / 박종헌

그것이 논밭을 갈고
땅심을 돋우는 일이 아니라면
가슴 속 이랑을 가꾸고
씨뿌리는 노래가 아니라면
여기 이렇게 창 밖의 동해를 바라보아야 한다.
설악을 타고 내린 눈바람도 활짝 날개를 펴는 곳
마른 풀잎 하나에도 말씀이 있듯
바닷속 암초들이 꿈틀거리고, 때론
갈매기 하얀 날개짓 사이로 반짝이는 태양.
창밖엔 온통 비릿한 살내음이다
동해와 설악이 만나고
바다와 하늘이 살 비비며 지새운 한밤
원산 바닷물도 하나가 되고
푸른 속살 가르고 떠오른 태양 아래
그림자 하나로 마주서야 하는 우리들.
일상에 베인 상처를 핥으며
여기 동해바다에서
파도에 철필을 눌러 쓰는 편지는
화해와 만남의 악수.
바람처럼 물길처럼
남쪽에서 북녘으로, 북쪽에서 남녘으로
서로가 이제는 떠나야 할 때.
창을 열면
우리 가난한 마음 속에 백두대간 맞닿는
동해가 있다.

 


바다로 나가볼까 / 이상호

바다에는 커다란 음반音盤이 하나
밤낮 돌면서
제 가슴을 비워
푸른 물소리를 만들고.

뭍에서 뜻을 잃은 새들은
바다로 가서
바람에 귀를 씻고
그 소리를 듣고 있다는데.

나도 마음 한구석 설레며
바다로 나가볼까
몸 기울여
바다가 될까.
가까이 갈수록 바다는 조금씩 몸을 감추었지만
음질音質이 좋은 푸른 음반은 돌면서
흐린 내 귀를 씻어주는데
바다에 몸 기울인 새들은
날아서 뜻을 짓는구나.

떠나간 이여
떠나간 이여
바다를 버린 새들만이
진실로 바다로 돌아올 수 있다네.

가슴에 막막한 구름 흐르거든
오늘밤 비 내리기 전에
바다를 향하여
마음 열어도 좋으리.



겨울바다 / 유화운

밤내 울어버린
겨울바다에
발자욱을 내는 아침
우린 서로가 같이 있어도 외로운
가슴이 하이얀 갈매기

서로의 이상理想처럼 높은
파도가 시작하는 수평선엔
오늘은 태양이 뜨지 않아
흐린 잿빛

잠을 못이뤄 밤새 뒤척인
꿈이 없는 아침을
소금기 섞인 바람따라
그렇게 생각들을 나부끼며 날으다
세차게 세차게
안아버린 서로의 고독
서로의 절망

이젠 우린
잉태한 알을 낳아야 하는 갈매기의 슬픔에
파도소리보다 더 높은
울음들을 울어야 한다
금빛 모래알보다 더 내밀한
가슴들을 적셔야 한다.


술에 취한 바다 / 이생진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나는 내 말만 하고
바다는 제 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낙산 바다 / 함성호

이젠
반가운 게
없구나, 얘야
삼월이 가고
윤삼월이 오고 가요
사월 초파일에는
홍련암에 또
등 달러 가셔야죠
어머니가 뜯어놓으신
달력처럼
어머니 끄으는 연분홍 치마 뒤로
수북해요, 세월이
눈물이 참
낙산 바다처럼
주렁주렁하네요
거울 속에
방울 소리
어머니,
제 칼 받으세요

바다에 누워 / 박해수

내 하나의 목숨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 저문 노을을 바라본다
설익은 햇살이 따라오고
젖빛 젖은 파도는
눈물인들 씻기워 간다
일만(一萬)의 눈초리가 가라앉고
포물(抛物)의 흘러 움직이는 속에
뭇 별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
마음은 시퍼렇게 흘러 간다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가 될까
물살이 퍼져감은
만상(萬象)을 안고 가듯 아물거린다.
마음도
바다에 누워
달을 보고 달을 안고
목숨의 맥(脈)이 실려간다
나는 무심(無心)한 바다에 누웠다
어쩌면 꽃처럼 흘러 가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외로이 바다에 누워
이승의 끝이랴 싶다.

 

 

여름바다 / 윤정옥

여름에는 바다가 지쳐
길게 엎드리는 걸 사람들은 모른다
현미경 조명 아래 플라나리아처럼
축 늘어져 모래언덕에 걸쳐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

하루 하루가 웃자란 쑥갓대처럼
바람 불면 흔들려
다 쏟아낼 듯 위태하고
빈집으로 배달된 신문들이 쌓여가도
사람들은 바다로 나와 바다를 건드린다

그늘진, 고인 물 속의 미물처럼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는 바다의
가누지 못하는 머리
하루종일 젖은 모래 밟아도
차갑게, 명징하게 나와 만날 바다는 없더라

그저 우리 사이에 놓여 있는
교감의 통로 하나
다소곳이, 수줍게
수평선 너머로 들어가는 해에 대한,
바다의 미소
나는 여름 바다에서 노을만 보았다


7월의 바다 / 황금찬

아침 바다엔
밤새 물새가 그려 놓고 간
발자국이 바다 이슬에 젖어 있다.

나는 그 발자국 소리를 밟으며
싸늘한 소라껍질을 주워
손바닥 위에 놓아 본다.

소라의 천 년
바다의 꿈이
호수처럼 고독하다.

돛을 달고, 두세 척
만선의 꿈이 떠 있을 바다는
뱃머리를 열고 있다.

물을 떠난 배는
문득 나비가 되어
바다 위를 날고 있다.

푸른 잔디밭을 마구 달려
나비를 쫓아간다.
어느새 나는 물새가 되어 있었다.


서쪽 바다 / 이면우

해 지는 바다에 가닿았지요
세상에 무엇이 큰 건지 입 꽉 다물고 봤지요
젖은 모래밭 이쪽에 불붙은 유리창, 수리중인 작은 배
또 깡총대는 아이들과 아리아리한 여자들
앞에 두고 눈 한번 글썽거리잖고 붉은 해
저 혼자 바다 속으로 가라앉더라구요

지는 해 따라 숨가쁘게 달려갔지요 거기
세상에서 제일 큰 붉은 마침표
아무렇지도 않게 품어버리는 서쪽 바다 처음 보며
일천 와트 플럭에 등 꽂혀 덜덜덜 오래 그냥 떨어었지요


바다 / 채호기

숨구멍으로 말들이 밀려들어왔다 땀구멍으로 천천히 빠져나갔

다. 저기 저기 미동도 않는 화살촉 같은 꼿꼿한 녹색나무. 욕망이

어왔다 빠져나갈 때처럼 당신은 밀려왔다 뾰족한 펜 끝으로

빠져나갔다. 알 수 없이 근질거리는 그곳을 당신은 언제나 빗겨

지나갔다. 바다는 수시로 들락거리고 젖은 모래와 마른 모래의

경계는 늘 예상할 수가 없다.
숨쉴 때 일정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당신의 배처럼 바다가 조용
하게 밀려왔다 빠져나갔다.



바다 / 임영조

청비단 이불 위에
날마다 발가벗고 누워서
아득한 하늘만 유혹하다가
시퍼런 욕정을 숨길 수 없어
제풀에 몸이 달아 자지러지듯
이리저리 뒤척이는 그녀를 보면
나도 문득 그 옆에 가 눕고 싶어라.


 

  바다에서 / 최병무 

 

 

   바다는
   언제나 나를 포함하길래
   그냥 그 위를 걸어가도 될 것 같은
   착각을 한다

 

   여기서 태초에 창조의 실험이 
   있었으리라는 당신의 
   언질을 기억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바다를 그리워하나?

 

   다도해 같은 Mindoro 가는 
   뱃길,
   나도 원주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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