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순옥 여사 별세, 가장 먼저 알린 '트위터'
천상병 시인과 목순옥 여사
천상병 시인과 목순옥 여사
한국 문단의 순수시인, 기인으로 불렸던 고 천상병 시인의 아내 목순옥 여사가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인사동에 자리 잡은 카페 ‘귀천’을 운영하기도 했던 고인의 해맑은 눈빛이 생생하게 살아 오릅니다. 예술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귀천. 귀천은 천상병 시인의 대표 시이기도 합니다. 귀천 사랑방은 희노애락, 기쁨의 작은 마당이었고, 분노로 찬 가난한 예술가들의 화풀이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말은 하시지 않았겠지만 목순옥 여사의 가슴 속에 잠긴 마음의 멍은 얼마나 컸을까요?
동백림(동베를린공작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면서, 그 때 당한 고문과 정신적 상처 때문에 방황했던 천상병시인. 동백림 사건에 연류된 친구에게 막걸리 값을 빌렸다는 이유로 한 시인의 운명을 망가뜨렸던 박정희 정권. 곁에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함께했던 목순옥 여사님. 천상병 시인이 노래했던 하늘에서 이슬이 되어 손에 손을 잡고 다시 소풍을 떠나십시오. 잘 가십시오.
"같이(천상병 시인) 가더라도 내가 따라오나 안 오나 확인하고 말씀을 계속 반복하시는 거예요. 파출소 앞을 지나가실 때에는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주무실 때도 갑자기 깜짝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이셨어요." (목순옥 여사)
귀천/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란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동백림 사건(東伯林事件) 또는 동베를린 사건은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간첩단 사건이다. ‘동백림’은 당시 동독의 수도였던 동베를린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대한민국에서 독일과 프랑스로 건너간, 194명에 이르는 유학생과 교민 등이 동베를린의 북조선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고 간첩교육을 받으며 대남적화활동을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중앙정보부가 간첩으로 지목한 인물 중에는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던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로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천상병시인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하였다.
간첩으로 지명된 교민과 유학생은 서독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강제로 대한민국으로 송환되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은 당시 독일연방공화국(서독) 정부와 외교문제를 빚기도 했다.
1967년 12월 3일 선고 공판에서 관련자 중 34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으나, 대법원 최종심에서는 간첩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는 없었다. 윤이상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는데, 유럽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과 독일연방공화국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항의하여 복역 2년 만에 석방되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6년 1월 26일에, 당시 정부가 단순 대북접촉과 동조행위를 국가보안법과 형법상의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하여 사건의 외연과 범죄사실을 확대·과장했다고 밝히고, 사건 조사 과정에서의 불법 연행과 가혹행위 등에 대해 사과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출처:위키백과
2010년 8월 26일 바로 오늘
시 <귀천(歸天)>으로 유명한
이제 고인이 된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세상을 떠나셨다.
천상병 시인이 평생 시 쓰기 외에는 직업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인의 뒷바라지를 했던 분.
1985년부터 서울 인사동에서 천상병 시인의 대표 시이기도 한 <귀천>이란 이름으로 전통찻집을 열어
문인들의 사랑방이자 인사동 전통문화 공간으로 사랑을 받기도 했다.
2년전인 2008년 4월 진달래꽃 활짝피던 날에
난 목여사님을 뵐 수 있었다.
천상병시인의 기일이기도 했던 그날,
특별한 행사장에서..
아마 <천상병시인>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으리라.
특히 난 용혜원 시인과 이정하 시인, 그리고 이해인 시인과 더불어 유별나게 좋아하는 분중의 한분이시다.
아니, 어쩌면 시인을 모르더라도 그의 시 몇편 정도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얼마전에는 TV의 CF로도 제작되었을 정도니까.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라는
그의 시가 TV에 자막으로 올라가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그의 시를 읊조리던........
<문단의 마지막 기인> 또는
<문단의 마지막 순수 시인>이라고 했던 그는
1993년 4월 28일 의정부 수락산 자락 초라한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
어쩌면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시인이 항상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을 가졌던 것은
그의 곁에 늘 함께 했던 목여사님이 계셨기 때문일 듯.,
그러면서도 시인은 <새>와 <귀천> 등 많은 시를 남기고,
그 시 속에서 죽음과 삶, 우주와 피안 등의 주제를 맑고 담백한 언어로 풀어내었었다.
오늘 시인의 곁으로 떠난 목순옥 여사.
분명 하늘로 돌아가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나고
진정 아름다웠었다고 시인에게 말하고 있으리라.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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